[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6] 큰활 메고 북벌길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6] 큰활 메고 북벌길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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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는 김종서의 적이 곳곳에 있었다. 양녕대군을 따르는 궁중 내외의 여러 계층 사람들은 모두 김종서를 제일의 공적으로 삼았다.
양녕대군의 측근뿐 아니라 조정의 여러 힘 있는 부서의 관원 중에서도 김종서를 눈엣 가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임금의 신임을 받아 막강한 자리만 옮겨 다니는 황희가 김종서를 싫어했다. 사석이건 공석이건 김종서만 눈에 띄면 괜히 야단을 치거나 트집을 잡았다.
김종서는 궁중 생활이 가시방석 같다는 탄식이 여러 번 나왔다.

그 무렵, 김종서가 한성을 탈출하여 훌훌 떠나는 계기가 생겼다.
세종 임금이 김종서를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로 임명했다. 세종 임금은 항상 잃어버린 북변의 옛 고려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윤관 장군이 개척한 공험진과 송화강 일대의 광범한 땅을 여진족과 명나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북쪽 변경에 가장 신임하는 두 사람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두만강 유역의 함길도에는 김종서, 파저강(압록강) 유역인 서쪽에는 최윤덕을 군사 책임자로 임명했다. 최윤덕은 일찍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용담이 널리 알려진 장수였다. 특히 세종 임금 초기 대마도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임금은 최윤덕의 종사관으로 전략이 뛰어난 대호군 이세형을 임명했다. 

세종 임금은 김종서를 함길도로 보내는 날 털모자와 털신을 하사했다. 때 마침 섣달이라 북변 추위가 매섭기 이를 데 없는 시기였다.
“변경의 혹한을 이 보잘것없는 모자와 신발이 감당이나 하겠소만은 과인의 뜻이 담긴 것이니 항상 쓰고 신으시오. 그리고 내가 준 활도 잊지 마시오.”
임금의 따뜻한 마음이 김종서의 가슴을 적셨다.
“황공하옵니다. 제 신명을 바쳐 고려 땅을 회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공험진과 송화강이 모두 풀밭이 되어 되놈의 군사가 유린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오. 경이 오랑캐를 몰아낼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오. 빨리 군진을 갖추고 우리 백성을 이주시켜 군사들이 멀리 전라도, 경상도에서 수자리 살러 오지 않게 되기를 바라오. 그곳 여진족과 천민들을 수습하여 양민으로 삼고, 양민에게는 지방 관직을 주어 병사들이 안심하고 모여 살게 해야 할 것이오.”
김종서는 임금의 말을 들으며 홍득희와 여진족 산적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들을 수습하여 양민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심하여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지요. 지금이 혹한기라 때가 나쁘다고 생각지 마시오. 경은 한성에서 못된 신료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과인이 잘 알고 있다. 잠시 궁궐을 떠나 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종서는 임금의 깊은 배려에 눈시울이 젖었다.

김종서가 부임하던 날 일행이 광화문을 출발해 돈의문을 지날 때였다. 문만 나서면 김종서의 사가가 보이는 곳이었다. 김종서 도절제사를 마중하는 행렬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그 속에는 김종서의 정처 윤 씨 부인과 큰아들 승규도 보였다. 연도 환송객을 내다보던 김종서는 낯익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환송객 속에서 눈으로 인사를 보내는 두 사람은 천시관과 백규일이었다. 
김종서는 얼마 전 목숨을 구해준 은공도 있고 해서 말을 잠시 멈추고 천시관을 손짓으로 불렀다.
“내가 함길도로 간다는 것을 홍 두령도 알았으면 좋겠네. 자네들은 계속 여기 남을 생각인가?”
김종서가 옆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들은 홍 두목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홍 두령은 장군님이 함길도로 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천시관도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나는 가네.”

 

김종서가 간단한 인사말을 남기고 말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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