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7] 여진족에 짓밟히다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7] 여진족에 짓밟히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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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종서가 함길도로 가고 있는 동안 북방 변경에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났다. 이징옥이 판부사로 있는 회령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송희미가 절제사로 있는 경원성 주변에서는 여진족의 발호가 빈번했다. 송희미는 해주에서 홍득희에게 본영을 짓밟힌 죄과로 잠시 물러나 있다가 강등되어 경원 절제사로 가 있었다. 따라서 김종서 도절제사의 휘하가 되었다.

북방의 여진족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야말로 춘추 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는 이만주와 홀라온의 두 세력이 다투고 있었다. 최근에 홀라온과 이만주가 손을 잡고 조선 영토를 침범하려는 계책을 세우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김종서가 함흥에 도착하던 섣달 그믐날이었다. 송희미는 경원성에서 잊지 못할 치욕의 날을 맞고 있었다. 송희미는 그믐날이라는 핑계로 경원에 있는 관기 여섯 명을 몽땅 불러 질펀한 음주가무 판을 벌였다. 자정이 넘도록 비장들과 술을 마신 송희미는 관기 둘을 양팔에 끼고 침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해가 중천에 솟을 무렵 송희미는 갈증이 나서 물그릇을 찾았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송희미에게 곁에 앉은 관기 춘산이 아양을 떨었다.

“나으리 어젯밤에는 정말 힘이 장사였어요. 역발산 항우가 따로 없었어요. 쇤네는 정말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그랬어? 그럼 다시 한 번...”

송희미가 게걸스런 웃음을 흘렸다.

“아이 나으리도. 빨리 병영에 나가셔야지요. 요즘 시절이 너무 수상해서요.”
“시절이 수상하다고? 어제 오늘 같은 호시절이 있겠냐?”
“쇤네가 새벽에 잠깐 꿈을 꾸었는데, 나으리가 다리를 잘리는 꿈이었습니다. 오늘은 특히 조심해야 하겠어요.”
“어? 뭐야? 내 다리가 잘린다고? 어느 다리야?”
겁이 많은 송희미는 자신의 사타구니부터 만져 보았다.
“내가 오늘은 꼼짝 않고 성 안에 앉아 있을 테니 염려 말아라.”

송희미의 얼굴에 공포와 수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때였다. 

“절제사 나으리! 큰일났습니다.”
판사 이백경이 허겁지겁 송희미 앞에 달려와 엎어지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오랑캐 수백 명이 경원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뭐야? 오랑캐가? 어느 쪽 군사냐?”
“깃발로 보아 이만주의 여진족 군사 같습니다.”
“뭐 이만주? 

송희미는 평소 이만주라는 말만 들어도 덜덜 떨었다.

“성문을 꼭 잠그고 모두 지켜라.”
송희미는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예? 나가서 싸우지 않고요?”
“병법에는 수성이 최고라고 했다.”

이백경이 나가 싸우자고 몇 번 더 간청을 했으나 송희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절제사가 방안에 들어앉아 미동도 않자 다른 장수들도 성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오랑캐 군사들은 무방비의 경원성 주변에서 하루 종일 노략질을 했다. 이만주의 군사들은 민가의 닭과 소를 모두 끌어다가 잡아먹으며 분탕질을 하고 여염집 부녀자를 데려다가 마음대로 강간했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여자들은 그 자리서 목을 베어 죽이기도 했다.

 

처참한 광경은 밤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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