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50] 변방의 여자생각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50] 변방의 여자생각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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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김종서는 엄자치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세손 문제는 거론이 있었습니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종실 문제로 화제가 옮겨가자 김종서가 물었다. 김종서는 승정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궁중 내의 여러 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도절제사께서 아시다시피 세자 저하께서 문약하시어 후사를 튼튼히 해야 할 것입니다.”

세자 향(珦)은 세종 임금의 장남이지만 몸이 부실해서 임금의 근심이 컸다. 세자빈을 두 번이나 맞이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후궁 중에서 택한 권 씨가 세자빈이 되었다.
첫 번째 세자빈 김 씨는 투기가 심하고 빈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여 폐출되었으며, 둘째 봉 씨는 궁녀들과 동성애로 말썽을 일으켜 폐빈 되었다.
그러나 두 세자빈이 폐출된 진짜 원인은 세자에게 있었다. 워낙 몸이 약해 여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두 번째 빈 봉 씨가 동성애에 빠진 것도 따지고 보면 세자가 남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자가 이렇게 몸이 부실하다 보니 왕실의 어른들이나 조정에서는 세자 향의 후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세손으로 홍위 아기씨를 거론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공연하게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엄자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홍위(弘暐)란 후에 단종이 된 세손이다.

“세자 저하가 문약해서 후사 문제가 곧 닥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럴 경우 왕통이 제대로 계승되겠느냐 하는 걱정도 할 것이오. 세자 저하 주변에는 야심 있는 종친들이 많으니까요.”

김종서가 의미 있는 말을 했다.

“김 장군,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대역에 걸립니다.”
“내가 대역을 꿈꾸는 사람으로 비치시오? 허허허.” 

김종서가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야기는 다시 세종 임금한테 옮겨갔다.

“전하께서는 요즘 풍질이 심해서 온천을 자주 찾으십니다.”
“안질은 어떠세요?”
세종 임금은 피부병과 안질을 앓고 있었다.
“안질도 완쾌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달에는 온양에 있는 온천을 다녀오시다가 저한테 넌지시 이런 하문을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인데요?”

김종서는 직감적으로 자신에 관한 말이라고 짐작하고 귀를 세웠다.

“변방에 가서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 여자 생각이 날 것이다, 장수가 여자를 좀 탐하기로 무슨 큰 허물인가? 관기면 어떻고 야인 여자면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누군가가 모함한 것이 틀림없구먼.”

김종서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관기란 회령에서 온 관비 경비일 것이고 야인 여자란 여진족으로 오해받고 있는 홍득희를 말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절제사께서는 워낙 이 나라에 세운 공이 많아 적도 많다고 보셔야죠.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엄자치가 웃으면서 말했다.

엄자치가 돌아가고 난 뒤 김종서는 임금이 하사한 털신, 털모자, 털토시를 다시 꺼내 보았다. 털가죽의 품질이나 제작한 솜씨가 꼼꼼하고 야물었다. 김종서는 임금의 자상한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이 좋은 물건을 나만 쓸 것이 아니라....”

김종서는 문득 홍득희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다노도 춥기로는 이름난 곳이었다. 지금쯤 홍득희도 꽁꽁 언 손발을 녹이느라 고생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종서는 털토시 한 켤레를 잘 포장해서 믿을 만한 병사를 시켜 사다노의 홍득희한테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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