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9] 산에 그물을 치다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9] 산에 그물을 치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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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는 군사를 이끌고 멸악산 길목의 솔채로 올라갔다. 솔채는 양쪽에 산비탈이 있어서 폭 50여 보 되는 협곡이었다. 왼쪽 비탈은 잡목이 우거져 인마가 다니기 어려웠다. 오른쪽은 완만한 비탈로 큰 나무가 별로 없었다.

“기마나 우마차가 지나간다면 이 좁은 협곡뿐일 것이다. 여기서는 열 명의 군사로 스무 명을 막을 수 있다.”

김종서가 지형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그물을 여기 치고 홍패를 잡자는 것입니까? 홍패가 물고기도 아니고....”

양정이 여전히 비웃으며 물었다. 김종서는 양정의 말을 듣고도 못들은 척했다.

김종서는 협곡 바닥에 일자로 금을 그었다.

“모두 이곳을 한 줄로 파라. 깊이는 한 자 이내로 하라.”

김종서의 명에 따라 병사들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 자 정도 깊이의 도랑이 파였다.  

“자 이제 그물을 이곳에 한 줄로 묻는다. 그물의 한쪽 끝은 줄을 매서 오른쪽 언덕 위에 사람 키 높이만큼 움직이지 않게 묻는다. 줄 끝에 큰 돌을 매달아 묻어라.”

김종서의 명령대로 하자 작업은 금세 끝났다. 

“그물을 살짝 묻어놓고 위를 잘 골라 표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라.”

병사들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물의 왼쪽 끝줄을 길게 이어서 저 숲 속으로 가지고 간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줄을 잘 감추어라.”

중군 소속 병사 두 사람이 왼쪽 언덕 숲속으로 그물의 한쪽 줄을 가지고 올라갔다. 그리고 길에서 보이지 않게 숨었다.

“자, 내가 신호를 하면 그물 줄을 힘껏 잡아당겨야 한다.”

김종서가 명령한 뒤 칼을 뽑아 내리치는 시늉을 해서 신호를 보냈다. 숲 속에 숨어있던 병사가 줄을 힘껏 당기자, 묻혀있던 그물이 흙을 헤치고 길 위로 불쑥 솟아올라 길을 막아버렸다. 감쪽같이 길을 막기는 했으나 그것이 장애물이 되기는 어림없었다.

“장군님, 저거야 칼로 베어 버리면 있으나마나 아닌가요?”

양정이 또 비웃듯이 딴죽을 걸었다.

“갑자기 발 앞에 저것이 솟아오르면 기마 산적들의 말이 발이 걸려 넘어질 것이다. 앞장서 오던 말 몇 마리가 넘어지면 뒤따라오던 말도 넘어지고 ...”

“참으로 묘한 함정입니다.”

유자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산적들이 저기 함정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덮은 흙이 주변 흙과 색깔이나 모양이 다르면 안 되니까 잘 덮어야 하겠습니다.”

홍득희의 주력을 유인해서 그물로 잡자는 김종서의 전략이 교묘하기는 했으나 성공 여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작업이 끝나자 모두 고개를 넘어왔다. 양정의 우군은 솔채 고개에서 5백 보쯤 앞쪽의 야트막한 산 위에 막사를 치고 잠복했다. 막사는 산 밑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거기 복병이 숨어 있는 지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유자광의 우군은 백천에서 남동쪽인 국수봉 아래 머물렀다. 홍패가 곧장 개경 쪽으로 향할 경우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종서는 준비가 끝난 다음날 틀림없이 홍패가 멸악산을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성에 왔던 명나라 황제의 사신이 그날 개경을 통과하기 때문이었다. 명나라 사신이 갈 때는 어마어마한 봉물 행렬이 따르지만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명나라에서 사신을 호위하고 온 병사도 몇 명 안 되지만 조선 군사가 큰 무리로 호위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조선 호위 병력이 많다면 중도에 반란을 일으켜 사신을 위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많은 호위 군사를 원치 않았다.

홍득희라면 정탐꾼을 통해 이러한 사정을 훤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득희의 수하는 화천민이나 고리백정, 노비 등 천민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해 조선관아 주변에 있는 관노나 백정들을 매수 쉽사리 중요 정보를 캐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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