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7] 대호(大虎) 김종서
[이상우 실록소설 7] 대호(大虎) 김종서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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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놈이냐?”

김종서는 화살이 날아온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놈 김종서,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흰소리를 하고 다니느냐.”

복면을 한 건장한 남자 둘이 주저앉은 김종서 앞을 가로막고 섰다. 김종서는 가까스로 일어서서 그들과 마주섰다. 오른손으로는 어깨에 멘 활을 단단히 잡았다. 왼쪽 허벅지에는 화살이 꽂혀 있었다.

“우리는 이만주 장군의 부하다. 한양에서 웬 버러지 같은 놈이 와서 우리 여진 땅을 기어 다닌다기에 손 좀 보러 왔다.”

이만주란 당시 여진족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족장이었다. 그러나 종서는 그들이 여진족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만주 장군 밑에 있다고? 이만주 장군은 나와 각별한 사이인데 나를 이렇게 대접할 이가 없다.”

김종서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종서는 실제로 이만주를 만난 일이 있었다. 이만주는 조선에 대해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우리 장군님이 버러지를 좋아할 턱이 있느냐? 네놈은 와서는 안 될 곳에 왔다. 그것도 모자라 행패까지 부리고 다녔으니 오늘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버릴 것이다.”

복면을 쓴 키가 껑충한 자가 어깨에서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너희는 이곳에 주둔하는 조선군 소속 같은데, 누구의 명을 받고 나를 죽이러 왔느냐?”

김종서가 곧게 선 채 굽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살이 박힌 왼쪽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 내려 복숭아 뼈를 적셨다.

“이놈 봐라. 다리만 분지르고 목숨은 살려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 아예 그림자도 한양에 돌아갈 수 없게 흔적을 지워버려야겠다.”

복면 사나이가 밤 골짜기를 찢는 기합 넣는 소리를 냈다.

“하아압!”

복면은 도끼를 쳐들고 김종서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쳤다. 보기보다는 몸이 빠른 김종서가 가볍게 도끼를 피했다.

“응? 이놈이 제법인데...”

이번에는 다른 복면이 들고 있던 활을 집어던지고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내가 이놈을 요절내고 말 것이다.”

칼을 든 복면은 긴 칼날을 좌우로 휘저으며 김종서에게 덤볐다. 칼날이 반달 빛을 받아 섬광처럼 번뜩였다.

“휙, 휙.”

그러나 김종서는 온 힘을 다해 칼날을 피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칼에 목이 잘릴 것이라는 공포감이 온몸을 조여 왔다.

“으음-.”

얼마 안가 김종서가 복면의 칼을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김종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꼼짝 마라!”

비단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둠을 뚫었다.

“뭐야?”

쓰러져 있는 김종서의 목을 찌르려던 복면이 주춤했다.

“우리 훈장님을 건드리지 마라!”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은 아홉 살짜리 홍득희였다.

“뭐야?”

복면의 사나이는 기가 막힌 듯 주춤한 자세로 홍득희를 내려다보았다.

“이놈들 무기를 버려라.”

홍득희의 앞과 뒤에서 남자 아이 예닐곱 명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김종서는 학습소에서 자고 있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얼른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손에 손에 낫이며 호미며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여진족이다.”

다급해진 칼 쥔 복면이 소리쳤다.

“헛소리 말아라. 여진족이 그렇게 조선말을 잘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다가서자 복면들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더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훈장님!”

홍득희와 아이들은 김종서를 부축해서 학습소로 들어갔다.

“저놈들은 조선 병사들입니다. 틀림없어요.”

여진 아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송오마지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틀림없이 송희미 호군이 보낸 양정이란 놈일 것이다. 송희미 이놈, 두고 보자.”

김종서는 이를 악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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