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4] 그놈 죽여야한다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4] 그놈 죽여야한다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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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경원 회령에서 천리 길도 넘는데 왜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저희는 주로 공험진 부근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그럴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래, 그 사정 이야기나 좀 들어보자.”

그때였다. 건장한 청년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아저씨!”

청년이 김종서 한테 큰 절을 했다.
“네가 석이구나.”

“예. 아저씨 제가 사다노의 또오리 홍석이입니다. 아저씨, 용서해 주세요.”

석이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너희들이 이렇게 잘 자란 것을 보니 대견스럽다. 그런데 어쩌다가 도적과 관군이 되어 이렇게 만났단 말이냐? 아저씨는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비명에 가신 너희들 어머니 아버지가 아시면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남매를 바라보는 김종서의 눈에 잠시 이슬이 맺혔다.

“용서하세요. 비록 산적이 되기는 했으나 아저씨의 은공은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가르침을 따라 글도 배우고 올곧게 살려고 노력도 했지만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홍득희와 홍석이도 눈물을 삼켰다.

“그래. 어째서 이렇게 우리가 만나야 했는지 그 사유부터 들어보자.”

김종서가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는 아저씨를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습니다.”

홍득희도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명색이 왕명을 받들고 나온 토적 대장인데 산적에게 납치 되었으니 이제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나를 살려 보낸다고 하더라도 살 수가 없구나.”

김종서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가 이곳에 오신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밤에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병영에서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너희들이 병영의 군졸들을 다 죽이지 않은 이상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

김종서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초병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결박해서 병영 뒤 숲속 나무에 묶어 두었습니다. 물론 입에 재갈을 물려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고, 눈을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나머지 군졸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모두 아저씨가 내린 고기와 술을 먹고 깊이 잠들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김종서는 홍득희의 말을 들으며 어젯밤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사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평소 군사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던 장영실 상호군과 최산해의 이야기가 건성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너희들이 공험진이나 사다노에서 여기까지 와서 도적질을 할 때는 나를 만나는 일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어디 말해 보아라.”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꼭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비적질을 할지언정 아저씨의 옛날 은공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유부터 말해보아라.”

“이게 모두 송가 놈 때문입니다.”

홍석이가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가 놈이라니?”

김종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홍석이를 돌아보았다.

“송희미란 자 말입니다. 옛날 사다노 상호군으로 있을 때 아저씨를 죽이라고 자객들을 보낸 그 놈 말입니다.”

김종서는 홍석이가 왜 흥분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럼 너희들이 그 때의 내 원수를 갚기 위해 도적떼를 이끌고 천리 길을 왔단 말이냐?”

김종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놈은 우리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홍석이가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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