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0] 1당100 여두목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0] 1당100 여두목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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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두가 어이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자 군졸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패두는 다시 일어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냐?”

“나는 북쪽 변경 경원 땅에서 온 홍득희요. 봉물짐을 두고 순순히 물러가면 목숨은 살려주겠소.”

봉물짐을 고스란히 빼앗긴 호송대가 해주 감영에 돌아온 것은 그날 저녁 무렵이었다. 해주목사의 병영에서는 보통 난리가 나지 않았다. 관군이 여자가 두목인 산적 대여섯 명을 감당 못해 도망쳐 왔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황해도 감사 공인영은 즉각 호송 군졸들을 옥에 가두고 한성으로 급보를 알리는 파발마를 띄웠다.

황해도 감영으로부터 급보를 받은 조정은 조정대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다. 도승지 김돈의 보고를 받은 세종 임금은 한숨을 크게 쉬면서 물었다.

“열 명이나 되는 군사가 산적 몇 명을 못 당해 봉물을 빼앗겼다니,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산적의 무술이 일 당 백이었다 합니다.”

김돈이 군졸 편을 들었다.

“일당 백? 거기 우리 군사가 백 명이나 갔단 말이냐?”

“전하 제 말씀은....”

“더구나 산적의 괴수가 여자라면서?”

“계집의 무술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좌대언이 거들었다.

“우대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자 한 명을 못 당한 군사가 사내라고 할 수 있겠소?”

잠자코 있던 우대언 김종서가 아뢰었다.

“다시 산적 토벌 별동대를 만들어 해주 병영으로 내일 아침 떠난다고 합니다.”

“병조에 맡겨두면 산적 여두목이 경복궁 영추문까지 들어올 것이야.”

세종 임금이 탄식을 했다. 영추문은 경복궁 서문을 일컫는다.

“황해도 산적들은 보통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신의 짐작으로는 나타난 산적은 대여섯 명이라고 하지만 그 배후에 상당한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김종서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산적이 북쪽 변경에서 왔다고 하는데 천 리도 넘는 곳에 원정을 왔을 때는 그만한 곡절이 있을 것이다. 우대언의 말대로 무리가 훨씬 많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러하옵니다.”

김돈 도승지가 머리를 조아렸다.

“단단히 대처해야 할 것이오. 이번에는 병조에 맡기지 말고 담력깨나 있는 사람을 골라 보내야겠소.”

세종 임금은 말끝을 맺지 않고 우대언 김종서를 내려다보았다. 김종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대언 김종서의 예견처럼 황해도의 산적은 생각보다 규모가 클 수도 있다. 허술하게 대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종 임금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해주 목사 송희미에게 단단히 일러야겠습니다.”

김돈 도승지가 여쭈었다.

“송희미가 지금 해주목인고?”

세종 임금이 고개를 저었다. 워낙 표나지 않게 저었기 때문에 모두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러나 김종서는 임금의 불편한 심기를 놓치지 않았다.

“병조나 삼군부에만 맡겨둘 일이 아닌 것 같으니 이번에는 우대언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는 것이 어떻겠소?”

“예? 마마...”

놀란 도승지가 뭔가 말을 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도승지, 무슨 말인지 해 보아라.”

세종 임금이 김돈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저어, 김종서 우대언은 문신이지 무장이 아니온지라...”

김돈은 말끝을 흐렸다.

“때로는 문신이 무신보다 더 강할 수도 있어. 게다가 우대언은 오래 전부터 어깨에 활과 화살 통을 메고 살아온 사람이야. 어찌 김종서 승지를 문신으로만 보는가.”

“황공하옵니다.”

김종서가 허리를 굽히며 공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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