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1] 산적 여두목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1] 산적 여두목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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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김종서는 황해도 토적대(討賊隊)의 책임자가 되었다. 대궐을 나오면서 김종서는 자신의 기묘한 운명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10여 년 전 북쪽 변경 경원군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송희미와 다시 적전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김종서는 병조에 들러 해주 목사로부터 올라온 산적에 대한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병조 참의 이징옥이 보고서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산적들은 척후로 나온 인원은 5, 6명이었지만 배후에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여진족 두령 홀라온의 비호를 받고 있는 무장 조직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자 두목은 변장술과 무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항상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있어서 홍적, 홍패, 또는 홍 두목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그 여자 두목의 이름이....”

“홍득희라고 하더랍니다.”

“뭐요? 홍득희?”

김종서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키가 워낙 작아 일어서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징옥이 오히려 눈이 둥그레졌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다고 하던가요?”

“글쎄요, 장계에 그런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종서는 10여 년 전 어명으로 여진족 말과 문자를 수집하러 경원군에 갔을 때의 일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만난 아홉 살짜리 홍씨 성을 가진 소녀에게 자신이 득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던가. 그 아이가 자라서 산적이 되었단 말인가? 해주 화적 떼가 변방 경원에서 왔다면 홍득희일 가능성이 높았다.

 

김종서는 이튿날 1백여 명의 우군부 소속 군사를 이끌고 해주로 향했다.  임진강을 건너며 묘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송희미와 다시 마주치는 것도 기이한 일인데, 거기에 홍득희까지 얽혀 있다니 이런 기기묘묘한 일이 또 있단 말인가.’

 

그러나 홍득희가 사다노에서 본 그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인지, 혹은 동명이인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북쪽 변경 경원에서 여기 황해도까지는 천 리도 넘는 길인데 도적질하러 그렇게 먼 곳까지 설마 원정을 왔겠느냐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김종서 토적대는 일단 해주 목사 병영에 머무르기로 했다. 해주목사 송희미는 겉으로는 반갑게 김종서를 맞이했다. 김종서도 옛 일은 잊은 것처럼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어찌 그때의 일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산적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봉물 호송하던 군졸과 역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요?”

김종서가 산적에게 당한 군졸과 역졸의 안부를 물은 것은 그들을 거두어 합류시킬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겁한 놈들은 모조리 옥에 쳐 넣었습니다. 내일쯤 한성 의금부로 압송할 생각입니다.”

“한성으로 보냅니까?”

“전쟁에서 도망친 자는 부월을 맞아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단 한성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부월(斧鉞)이란 장수가 전장에 나갈 때 왕이 내리는 도끼를 말한다. 이 도끼는 군율을 다스릴 때 사용한다는 상징적인 지휘봉이다.

“도망쳐온 군사의 장수는 책임이 없나요?”

김종서는 해주지역 병마 책임자는 해주 목사라는 뜻으로 말했다.

“봉물 호송 군사의 책임자는 해주 목사 병영 소속이 아니라 한성에서 왔습니다.”

송희미도 지지 않았다.

“지금은 병력이 한 명이라도 필요한 때입니다. 도적떼를 본 일이 있는 병졸이 필요합니다. 모두 풀어주고 토적대에 편입시켜 주시오.”

김종서의 단호한 태도에 송희미 목사는 결국 동의를 했다.

“그 대신 나도 해야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송희미가 그냥 들어주기는 억울한지 다른 조건을 내놓았다.

“말해 보시오.”

송희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해주목 병사 중에 양정이란 사람이 있는데...”

양정은 송희미가 회령에서 호군으로 있을 때부터 측근에 있던 패두였다. 김종서를 괴롭히려다 홍득희 등 여진족 아이들에게 쫓겨간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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