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언께서 꼭 공을 세우고 싶다면 그렇게 지원하겠습니다. 어느 길목을 지키고 있을까요?”
송희미는 김종서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산적 홍패가 보통 버거운 상대가 아니란 것을 눈치 챈 송희미는 부딪칠 생각이 없었다. 원래 천성이 비루한지라 싸움터에 나서기를 꺼렸다.
“홍패가 멸악산 속에 산채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멸악산과 해주 가운데인 한천에서 포진하고 있으면 될 것입니다.”
“한천이라.... 동네 입구에 협곡이 있는데 산적 떼를 거기까지 유인해 온다면 독안에 든 쥐가 되지요.”
송희미는 선선히 동의했다.
“그리고 목사 영감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송희미는 또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오만한 턱을 쑥 내밀었다.
“해주는 서해를 끼고 있으니 수군이나 어선들을 거느리고 있지요?”
“그렇습니다만....”
“저인망 같은 어망이 좀 필요한데 구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어망이라니요? 그물 말씀입니까?”
“그렇소.”
“산적 소굴은 멸악산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망으로 산에 있는 도둑을 잡으려는 것입니까?”
송희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도적을 잡는데 긴히 쓸 물건입니다. 촉고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폭이 50보정도 되는 것 하나면 됩니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필요합니까?”
“내일 쓸 것이니 오늘 밤까지는 여기에 도착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무슨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송희미는 몹시 궁금해 하면서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날 밤. 김종서는 좌군의 유자광과 우군의 양정을 불러 작전 지시를 내렸다.
“내일 새벽에 적을 토벌하러 멸악산으로 간다. 내가 직접 인솔하는 중군이 앞장서서 적의 정면으로 들어간다. 좌군은 솔채 고개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중군을 뒤쫓아 오는 적을 모두 생포한다. 우군은 솔채 고개보다 5백보쯤 앞에 나가 매복하고 있다가 중군과 좌군이 뒤돌아서서 적을 칠 때 퇴로를 막아야 한다.”
“적의 숫자가 8십여 명이라면 한꺼번에 유인에 걸려 따라올까요?”
유자광이 물었다.
“나도 그걸 고려해 보았다. 아마도 모두 오지는 않고 말을 탄 도적떼가 앞장서서 따라올 것이다. 중군에는 기마병이 일곱이나 있으니 이 기마병이 유인작전을 펼 것이다. 기마병을 추격해 오자면 적들도 기마 병력을 쓸 것이다. 말을 탄 산적은 모두 열대여섯 명이다. 이 말 탄 도적들만 생포하면 적의 조직은 무너진다.”
“중군의 기마가 일곱 기인데 열대여섯 기의 산적 기마병을 어떻게 제압합니까? 우리 병사들은 기마병과는 상대가 안 됩니다.”
양정이 겁부터 먹었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더구나 화포도 가지고 있다는데, 추격을 해서 따라 오더라도 후방에서 화포를 쏘아 우리를 곤경에 빠트리면 어쩝니까?”
“싸워 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으면 필패다. 80명의 산적을 관군 백 명이 잡지 못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산적이 아무리 용맹스럽고 무술이 뛰어나도 산적은 산적일 뿐이다.”
김종서가 양정을 나무랐다.
“해주 병영서 군사가 온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유자광이 물었다.
“해주 병영에서 지원군이 와도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산적들을 막지 못하면 후방에서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김종서는 유자광의 질문에 기대하지 말라는 투로 대답했다.
“해주에서 그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중군 소속의 병사가 김종서에게 보고했다.
“그물이라고요? 아니 산적 잡는데 그물이 무슨 소용입니까?”
함께 있던 우군 패두 양정이 비웃었다.
그러나 김종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해주서 보낸 그물을 살펴보았다. 어부들이 쓰는 코가 성긴 어망이었다.
“중군 소속 병사들은 이 그물과 곡괭이, 괭이를 가지고 솔채 고개로 간다. 유자광과 양정 패두도 따라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