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5] 야밤 치마 쓰고온 여인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5] 야밤 치마 쓰고온 여인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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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찰 추장입니다.”
“너희들을 쫓아온 여진 병사는 홀라온의 군대냐?”

김종서가 다시 여진 말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두목은 여기가 홀라온의 막사인 줄 잘못 알고 공격했던 것입니다.”
“음, 그렇게 되었구나.”

김종서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서는 종성에 머물면서 육진 개척을 계속 구상했다. 인근에 있는 진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여진족 두목들의 동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여진족 두목 중에서도 홀라온이나 우디거는 조선에 대해 겉으로는 복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만주나 범찰 같은 추장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일단은 파저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고 송화강 너머 공험진을 다음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상호군 조석강의 주장이었다. 

“무조건 무력만을 앞세우면 면종복배하는 무리가 생길 것이오. 그러니 진심으로 조선 백성이 되기를 원하도록 해야 할 거요. 그렇게 하자면 여진 추장들에게 공물을 강요해서는 안 되오. 군사들이 힘들겠지만 둔전에 힘써서 자급자족의 힘을 길러야 하오. 조정에서 보내는 식량에만 목을 빼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되오.”

김종서가 백성을 대하는 태도는 군림하는 목민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오랑캐를 너그럽게 대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변방에 나와 있는 벼슬아치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경성에서 전략을 치밀하게 세운 김종서가 회령으로 떠나기 며칠 전날 밤이었다.

“장군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막사를 지키고 있던 패두가 막 잠들려는 김종서에게 알렸다.

“이 밤에 누가 오셨단 말이냐?”

손님이라는 바람에 김종서가 거처인 임시 막사 밖으로 나갔다.
거기는 쓰게 치마를 쓴 여인과 짐승 가죽 옷을 입은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뉘시오? 이 밤중에...”

김종서는 저으기 놀라며 물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 변방의 밤에 찾아온 여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 접니다. 득희입니다.”

홍득희였다. 홍득희는 쓰개치마를 조금 걷어 올리며 코끝을 내밀었다.

“아니, 득희가, 득희가 이 밤중에 웬 일이냐. 너는 석이 아니냐, 그리고 오마지도...”
“저는 오마지의 동생인 송오서지입니다.”

가죽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홍석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슬 맞겠다. 이리 들어오너라.”

김종서가 세 사람을 막사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저희는 다른 막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홍 두령이 장군님께 긴히 여쭐 말이 있다고 합니다.”

송오서지가 말했다.

“그래? 득희라도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김종서는 홍득희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장작으로 화로에 불을 피우고 있어 매캐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야영 생활에 익숙한 홍득희는 견디기 쉬웠다.
홍득희는 방안에 들어서자 쓰개치마를 벗고 김종서에게 큰 절을 했다. 흰 저고리에 긴 쪽빛 고름이 돋보였다. 붉은 치마는 홍득희를 더욱 여자로 보이게 했다. 화로와 등잔불을 겸한 장작 불빛에 비친 홍득희의 얼굴은 발그레 물들었다. 둥그스럼한 어깨며 옷 위로도 느껴지는 가는 허리, 그리고 둥그런 엉덩이가 홍득희를 영낙 없이 과년한 여자로 보이게 했다. 
수줍은 듯한 눈망울과 야물게 다문 도톰한 입술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이 넘쳤다. 백마를 타고 긴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뚫고 달려 나가는 여장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종서는 자기도 모르게 홍득희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졌다.

‘득희가 여자로 보이다니...’

김종서는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사다노에서 오는 길이냐?”
“아닙니다. 회령 쪽으로 가다가 아저씨가 여기 계신다는 말을 듣고 들르게 되었습니다.”
“회령에는 무슨 일로?”
“아저씨를 만나려고요. 뵌 지도 오래 되었고... 이곳 사정도 알려드려 북방 변경 개척에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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