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4] 술판에 날아든 화살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4] 술판에 날아든 화살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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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크기로는 우리 장군님을 당할 사람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키는 작아도 별호가 대호(大虎) 아닌가.”

병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횃불을 밝히고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모두 흡족해했다. 두고 온 고향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김종서도 병사들과 술잔을 앞에 놓고 섞여 저녁 한때를 즐겼다.
그때였다.

‘피유웅-.’
‘쨍그렁.’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김종서 상 위의 술병을 깨트렸다. 

“기습이다!”

비장들과 병사들이 모두 혼비백산해서 우왕좌왕했다. 상다리 밑에 숨는 자, 쇠다리를 들고 도망가는 자, 땅에 엎드려 꼼짝하지 않는 자 등 당황하는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러나 김종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마시던 술잔을 들이켰다.
김종서가 너무도 태연하게 앉아 있자 비장과 진무들이 민망해서 제자리에 돌아왔다.

“오랑캐가 기습해서 쫓아오고 있습니다. 장군님 빨리...”

비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인이 적을 겁내면 이미 진 것이다.”

김종서는 천천히 일어서서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벗어 왼손에 잡았다. 그제야 비장과 진무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 대열로 정비하라!”

조석강의 명에 따라 삽시간에 전투 대열로 바뀌었다. 적군은 이미 진영에 육박해 있었다. 말을 탄 여진군 병사 대여섯 명이 먼저 진영으로 뛰어들다가 병사들의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뒤이어 여진군 보병들이 몰려들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술 마시다 기습을 당한 조선군이 유리할 수는 없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다.

“여진군이 또 옵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정말 삼각 깃발을 앞세운 여진군 복장의 기마부대 수십 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빨리 성 안으로 대피하라.”

조석강이 소리쳤다. 그러나 김종서는 꼼짝도 않고 선 채로 새로 몰려오는 여진군 기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절제사 나으리, 지금은 대적할 때가 아닙니다.”

비장들이 김종서를 향해 대피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김종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진군을 향해 활을 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였다. 먼저 공격을 해온 여진 병사들이 뒤돌아서기 시작했다. 자기들 끼리 여진 말로 무엇이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조선 비장이나 병사들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먼저 공격하던 여진군이 뒤로 돌아서서 새로 달려오는 여진군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조 진무, 잠시 공격을 멈추라고 하라.”

김종서가 조석강을 보고 명령했다.

“싸움을 멈추어라.”

조석강의 말에 따라 조선군은 일제히 공격을 멈추었다.

“새로 온 여진군은 먼저 온 여진군과 싸우려는 것이다. 먼저 온 여진군이 뒤에 적이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김종서는 세종임금의 명으로 10여 년 전 사다노에서 여진 말을 수집하던 경험이 있어 여진 말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종서의 추측이 맞았다. 새로 온 여진군은 먼저 온 여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진족끼리 싸움이 붙은 것이다.
조선군 진영 앞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던 여진족 중 먼저 온 여진족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뒤에 온 여진족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추격을 시작했다. 원수끼리 만난 것 같았다.
조선군과의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조선군 진영에는 다시 우둥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선 병사의 피해는 얼마나 되느냐?”

김종서가 비장을 보고 물었다.

“전사 두 명에 부상자가 여섯 명입니다.”
“여진군 병사 중에 부상당해 돌아가지 못한 병사가 몇 명이나 되느냐?”

김종서가 조석강에게 다시 물었다.

“두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으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전사한 조선군 병사는 장례를 잘 치러 주어라. 그리고 죽은 여진군 병사들도 잘 묻어주고 부상한 여진군 병사가 중상이 아니라면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김종서의 명에 따라 여진군 병사 한 명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김종서 앞에 끌려왔다.

“너희 추장은 누구냐?”

김종서가 여진 말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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