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64]호랑 향해 떠난 화살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64]호랑 향해 떠난 화살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0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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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것이 아니고 아저씨의 활에 화살의 돌파력을 높여주는 보강을 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방으로 호랑이를 죽일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만약 한 방에 호랑이를 죽이지 못하면 두 발을 쏠 여유가 없이 호랑이에게 당하고 말 것입니다. 호랑이가 멀리 있을 때 쏜다면 두 발 쏠 여유가 있겠지만 멀리 있을 때는 이 활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승부는 호랑이가 가장 가깝게 왔을 때 단 한 방으로 죽여야 납니다.”

홍석이의 설명을 듣고 있던 김종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호랑이가 가장 가까이 왔을 때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
“30보 이내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30보라....”

김종서가 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옛날 승정원 신참으로 있을 때 경복궁에 들린 수양대군이 김종서의 활을 보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바마마가 그 활로 짐승을 쏘라고 하셨다는데, 사냥하는 활은 그런 활이 아니오. 사냥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동개활 정도는 돼야 합니다. 180보 이상은 나가야지요. 그건 기껏 80보쯤 나갈 텐데.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쏠 때 쓰는 거지...”

활과 사냥을 즐기던 수양대군의 말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홍석이가 김종서의 활을 보강하기로 결정했다. 결전의 날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이면 활을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홍석이는 박달나무로 된 김종서의 단궁(短弓)에 무소뿔을 덧대어서 탄력이 거의 배로 늘어나게 했다. 무소뿔로 만든 각궁의 장점을 첨가한 것이다. 시위도 소의 힘줄로 바꾸어 탄력이 훨씬 강하게 만들었다. 활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활대를 깎아내고 아교로 붙이는 까다로운 작업과, 아교를 굳힐 시간이 필요했다. 사흘이면 충분했다. 화살을 짧게 만들어 속을 파내고 납을 넣어서 더 무겁게 만들었다. 화살이 무겁고 짧으면 멀리 가지 못하지만 파괴력이 강해져 호랑이의 두개골을 충분히 뚫을 수 있게 된다.

마침내 사흘이 지나가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
김종서는 1천 명의 조선 군사를 거느리고 지정된 두만강변으로 갔다. 범찰은 벌써 와서 서편 모래사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김종서는 동쪽 모래사장에 군사들로 세 겹의 방패를 만들었다. 맨 앞줄의 병사들은 방패로 앞을 가려 마치 방패 담장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강물에서부터 바위 절벽에 이르기까지 튼튼한 벽이 만들어졌다. 호랑이가 달려와도 뚫을 수 없었다.
김종서는 전투복이 아닌 가벼운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투구도 쓰지 않고 망건만 한 채로 활을 메고 나섰다. 어설픈 시골 농부가 맹수를 잡겠다고 나선 행색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체찰사 나으리, 그렇게 하시고 호랑이를 잡으러 가시려 합니까?”

조석강이 놀라서 물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전투에 나갈 때는 투구와 갑옷을 입어야 하지요. 투구와 갑옷은 적의 화살이나 창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요. 활 쏘는 호랑이나 창칼 휘두르는 호랑이 보았소?”

김종서가 웃으면서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투구와 갑옷은 무게 때문에 사냥에 짐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호랑이가 덤벼들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조석강이 다시 걱정을 했다.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오. 만약 내가 호랑이 밥이 된다면 호랑이가 갑옷 벗기는 수고는 덜게 되겠지.”

김종서의 간담 서늘한 농담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예정대로 시작합니다. 내가 먼저 호랑이를 해 치우겠으니 잘 보아 두시오.”
범찰이 여진족 특유의 전립과 가슴만 가리는 간단한 갑옷을 입고 나오면서 큰소리를 쳤다. 여섯 자가 훨씬 넘는 만곡궁을 들고 나왔다. 전통에는 화살 3발이 꽂혀있었다.
“호랑이를 풀어라!”

범찰이 소리를 질렀다. 바위 절벽 위에서 달달족 병사들이 상자에 갇힌 호랑이를 풀어 놓았다.
황소만큼 덩치가 큰 호랑이가 산이 떠나갈 듯 포효하며 바위 절벽을 타고 강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바위 절벽은 가팔라서 사람은 도저히 오르내릴 수 없는 경사지만 호랑이는 억센 발톱으로 바위틈을 딛고 버티고 서서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범찰을 노려보았다.
호랑이를 올려다보는 범찰의 눈도 살기로 가득 찼다. 2천여 군사가 모두 숨을 죽이고 사람과 맹수의 팽팽한 신경전을 지켜보았다.
범찰과 호랑이의 거리는 1백 보가 훨씬 넘어 보였다. 팽팽한 눈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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