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9] 배신자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9] 배신자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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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바꾸어서 다시 한 번 읊어보아요.”

홍득희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졸랐다.

“그럴까?”

김종서가 다시 시조를 읊기 시작했다.

.....
만리 강둑에 큰 활 어깨에 메고
.....

“만리변성도 그게 더 어울려요. 호호호...”

두 사람이 두만강 둑에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겨울 해가 눈부시게 황야를 뚫고 솟아올랐다.

“벌써 해가 솟는구나. 너무 늦었다. 돌아가자.”

김종서가 말에 오르면서 말했다.

“아저씨 내기해요. 누가 먼저 막사에 닿는지 달리기해요.”

홍득희의 장난스러운 제의를 김종서가 선뜻 받아들였다.

“좋아. 내가 문신 출신이라고 얕보는 사람이 많은데, 말도 좀 탈 줄 알거든.”
“출발!”

홍득희가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김종서도 발로 말을 재촉했다. 그러나 내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홍득희가 배는 더 빠르게 달렸다. 

김종서는 홍득희를 사다노로 돌려보낸 뒤 다시 6진 개척의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은성과 부령이 문제였다. 은성에 있던 조선군이 홀라온 추장의 기습을 받아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부령에는 조선 백성보다 여진족이 더 많았는데, 홀라온은 이만주 산하의 여진족을 항복 받겠다는 명목으로 부령에 들어와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했다.
은성으로 가던 도중 급보를 받은 김종서는 회령의 박호문에게 출병을 명했으나 박호문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원군만 믿고 싸우던 조선 병사들은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김종서가 발길을 돌려 종성으로 향할 때였다. 이번에는 종성에서 급보를 가진 전령이 달려 왔다.

“너는 어디 소속이냐?”

김종서가 급보를 가져왔다는 전령에게 물었다.

“저는 함흥 감영에서 왔습니다.”
“함흥 감영에서 종성에는 왜 갔느냐?”
“도절제사님이 북변에 와 계셔서 연락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평안도 병마절제사이신 최윤덕 장군이 여연에서 이만주 추장과 싸우다가 함흥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함흥 감영에서 도절제사님과 연락이 안 되니까 여연과 가장 가까운 회령 박호문 절제사에게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박호문 절제사가 요청을 묵살하고 출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도절제사님께 보고하라는 감영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김종서는 기가 막혔다. 박호문이 자신의 명을 어기더니 이번에는 감영의 명까지 어긴 것이었다. 사실 박호문은 김종서가 임금에게 천거한 자였다. 그리고 현재 김종서의 예하 장수이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감사의 명까지 어기는지 알 수 없었다. 원래 배짱과 잔꾀를 함께 가진 무인이라는 평이 있었으나, 김종서는 박호문의 출중한 전략과 능력을 높이 샀었다.

“알겠다. 내가 회령으로 가서 사정을 알아보리라.”

김종서는 그 길로 돌아서서 회령으로 향했다. 돌아가면서도 박호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지런히 회령으로 돌아가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장군님, 한성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김종서를 수행하던 이징옥이 막사 밖에서 알렸다. 김종서가 문을 열자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쇤네 엄 가입니다. 문안 올립니다.”

세종 임금의 내관 엄자치였다.

“엄승지가 이게 웬 일이오? 추운데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세종 임금은 김종서가 엄동설한에 북방에서 모진 고생을 하고 있다며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엄자치를 보내 근황을 살피고 오라고 한 것이었다. 엄자치는 임금의 걱정을 전하며 털신 두 켤레와 털토시 두 짝, 털모자 한 개를 내놓았다.

“전하께서 직접 저에게 주시면서 꼭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전하, 황공하여이다.”
남쪽을 향해 부복한 김종서는 임금의 따뜻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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