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2] 납치당한 대호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2] 납치당한 대호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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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이 여기 있소?”

김종서가 잊을 리 없었다.

“아주 유능한 지략가입니다. 이곳 지리에도 밝고요. 양정을 토적대의 좌군장으로 삼아 주시오. 공을 세우고 김 공을 크게 도울 것입니다.

김종서는 토적대를 중군, 좌군, 우군으로 나누고 자신이 중군을, 유자광을 좌군 지휘자로, 유사진을 우군 지휘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잠깐 생각을 한 김종서는 양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자기 수하로 두면 적 하나를 없앤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군은 안 되고 우군을 맡기겠소.”

좌군을 맡긴 유자광은 양녕대군 엽색 행각을 조사할 때 알게 된 경복궁 갑사였다. 경덕궁 궁직 한명회의 친구이기도 한 유자광은 체격도 우람하지만 지모가 있어서 일개 갑사로 궁궐 경비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자광 역시 양녕대군으로 부터 분리시켜 수하에 둔다는 의미도 있었다. 

“앞에서 기생을 무르팍에 안기고 뒤에서 내 목에 칼질하려던 못된 버릇은 고쳤겠지요?”

김종서가 가시 돋친 말 한마디를 남겼다.

김종서는 갇혔다가 풀려난 병졸을 중심으로 척후대를 만들어 산적들의 동태를 파악하게 했다. 황해도 감영의 도움을 받아 민간인 간자를 풀어 산적이 숨어 있을 만한 산과 계곡을 모두 훑게 하였다.

이튿날 척후대와 민간 간자들의 정탐 내용을 종합해서 산적의 윤곽을 거의 파악했다.

산적들은 멸악산과 장수산, 그리고 국수봉을 근거지로 삼고 있으며 세 지점을 잇는 삼각 지점의 중간인 청석두에 본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적의 숫자는 칠팔십 명으로 파악되었다.

“우리는 백천에 본영을 둔다. 그 곳이 유사 시 개성 유수나, 해주 목사의 지원을 받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좌군은 장수산 쪽, 우군은 국수봉 쪽에 진영을 설치한다.”

김종서가 첫 명령을 내렸다.

김종서가 본영을 차린 백천은 오른쪽에 국수봉이 있고 왼쪽에 장수산이 있었다. 김종서는 산적이 출몰하는 지역에 광범위한 포위망을 쳤다. 북쪽으로는 험준한 멸악산이 있어 배수진 아닌 배산진을 친 셈이었다.

김종서는 본영인 중군 소속 군졸 30여 명을 야영장 장 앞 풀밭에 모이게 하고 낮에 개성 유수가 보낸 돼지 두 마리를 잡아 고루 나누어 주었다.

“싸움도 우선 배가 불러야 한다. 내일은 누가 목숨을 바쳐야 할지 모르니 오늘 후회 없이 먹고 마셔라. 그리고 철야 초병 외에는 잠을 푹 자 두어라.”

김종서는 무신들이 평소 부하를 다루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지시를 내렸다. 

그날 밤.

김종서는 본영 야영 천막에서 자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잠에서 깼다. 사방은 캄캄한데 분명 무슨 기척이 났다. 김종서는 얼른 일어나 벗어 놓았던 활을 어깨에 메고 칼을 찾았다.

그때였다. 야영 천막 안으로 검은 그림자 둘이 바람처럼 들어왔다.

“누구냐!”

김종서는 벌떡 일어나서 칼집에 손을 댔다. 그러나 그림자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김종서의 손에서 칼을 낚아챘다.

“나으리. 순순히 우리를 따르면 목숨은 부지하실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누구냐?”

김종서는 저항해 보았자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조용히 물었다.

“우리를 따라 오시오.”

그림자가 검은 수건으로 김종서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어깨를 감싼 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야영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초병도 순찰 군졸도 기척이 없었다. 본진이 이미 이들에게 접수된 상태인 것 같았다.

야영장 밖으로 김종서를 끌고 나온 그들은 말에 태웠다. 

“나으리가 탄 말은 앞뒤에 고삐를 쥔 사람들이 인도할 테니 가만히 따라 오기만 하십시오.”

그림자의 두목인 듯한 사람이 말했다.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냐?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냐?”

김종서가 재차 물었으나 아무 대꾸도하지 않고 말을 몰았다.

김종서는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가리지 않았더라도 눈앞이 캄캄할 판이었다. 도적 잡으러 나온 장수가 밤중에 자기 본영에서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가다니... 눈앞이 캄캄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 무슨 해괴한 수모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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