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14] 신분 불문 여자라면
[이상우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14] 신분 불문 여자라면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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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물이 잘 났소?”

“아마 숱한 남자들이 거쳐 갔을 거요. 종년이 뭐 일부종사합니까?”

“그 딸은 어떻소?”

김종서는 한명회의 이야기에 슬그머니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딸년 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어미는 이미 삼십을 훌쩍 넘겼지만 윤이는 이제 막 피어난 꽃망울이니 얼마나 예쁘겠소. 대군 마마의 눈이 보통 높습니까?”

“대군 마마가 상대한 여자는 모두 절색가인들이오?”

“아, 물론이지요. 초궁장이나 어리도 모두 출중한 미인에다 그 몸매가 남정네를 죽이지요.”

김종서는 한명회의 빗나간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 궁중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어떻게 되었소?”

“이튿날 파루 북이 울리자 모녀를 데리고 연화방 기매의 집으로 갔지요.”

“누가 데리고 갔소?”

“상호군 임상양 나으리가 앞장서고 이오방과 구중수가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저는 그길로 경덕궁 근무하러 갔으니까요.”

상호군 임상양은 정3품으로 삼군부 중군에 소속된 무관이었다.

“상호군 임상양도 대군 마마의 식솔이오?”

“물론입니다. 대호군 최정, 이귀수 나으리 모두 양녕대군 마마의 그늘에 있지요.”

김종서는 양녕대군이 권력에 미련이 없는 통 큰 풍류객으로 알았는데 그의 문어발식 사조직은 꽤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녕은 세자 시절부터 여색에 탐닉하여 미인이란 소문만 나면 처녀건 유부녀건, 양반이건 천민이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치마를 벗겼다. 태종 시절에 일으킨 굵직한 여색 사건만 해도 대여섯 건이나 되었다.

가장 큰 말썽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부왕 태종의 사돈인 청평군 이백강李伯剛의 집에 천하일색 한양 기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쳐들어간 사건이었다.

세자 양녕이 이오방, 구중수 등을 거느리고 느닷없이 대낮에 이백강의 집에 들어닥쳤다. 세자가 함부로 민가에 예고 없이 드나드는 일이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마침 청평군은 출타중이어서 아들이 양녕 일행을 맞이했다. 사랑채로 들어간 세자는 덮어놓고 호령을 했다.

“이 집에 한성 일색 초궁장(楚宮粧)이 와 있다는데 사실이오?”

아들은 갑작스런 세자의 질문에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내가 얼굴이나 좀 보고 갈 테니 술 한 상 차려 들려 보내시오.”

아들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초궁장은 상왕이며 큰아버지인 정종의 애첩이었다. 정종은 태종과는 달리 짧은 재위 기간에도 후궁 9명 외에도 수많은 애첩을 두어 무려 17남 8녀의 자녀를 남겼다. 정종이 죽고 난 뒤 초궁장은 이백강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큰 아버지와 한때나마 잠자리를 같이 했으므로 아무리 기생 출신이라도 초궁장은 양녕 세자에게 할머니벌 되는 여자였다.

누구의 명이라 거역할 수 있겠는가. 초궁장은 주안상을 차려 들고 양녕 앞에 나타났다.

“내 오늘 가까이서 보니 자네가 단단히 한 인물 하는구나. 어디 술부터 한 잔 따뤄 보아라.”

술을 몇 잔 마신 양녕은 마침내 대담한 행동을 했다. 초궁장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초궁장은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는지 앙탈을 부리지 않았다.

그날 밤 양녕은 끝내 초궁장을 품에 안고 금침을 함께 했다.

이일이 알려지자 대궐과 조정은 분노하다 못해 허탈해했다.

왕후 민 씨가 양녕을 불러다 놓고 호통 치자 양녕이 변명을 했다.

“어마마마, 소자는 초궁장이 큰할아버지를 모셨다는 것은 정말 몰랐습니다.”

양녕은 반성하는 척했으나, 그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초궁장을 이불 밑으로 불러들였다.

양녕은 여악들을 여러 번 건드려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여악(女樂)이란 궁중의 제례 음악을 맡고 있는 중요한 기구인 관습도감에 소속된 일종의 공직자로 궁중 행사 때 소리와 춤을 맡은 여자들이다. 궁중 고관들이 여자에 대한 추문을 일으킬 때마다 여악들이 관련되어 관습도감 폐지론이 일기도 했다.

양녕대군이 여악들과 사통 사건을 일으키면 이를 맡아 있던 관원들만 곤장을 맞거나 귀양을 가야 했다.

어느 날은 한양 창기들과 기생집에서 질탕 놀다가 창기 두 명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가까이 있는 장인 이한로(李漢老)의 집 말을 다짜고짜 몰아내 태우고 가기도 했다. 이한로는 장인이면서도 양녕대군의 이러한 엽색 행각을 은근히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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