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59] 9명 생명걸린 홍두목 화살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59] 9명 생명걸린 홍두목 화살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4.0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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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을 달리면서 화살을 하나씩 쏘아 포로들 사이에 있는 멧돼지를 전부 맞히면 포로를 풀어주겠다. 그냥 서서 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달리면서 마상에서 쏘고 지나가야 한다. 50보 밖에서 달려와 이곳을 지나면서 아홉 마리를 모두 죽여야 한다. 한 번 지나갔다가 되돌아서서 다시 올 수도 있다. 그러니까 두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화살이 조금만 빗나가면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말을 달리면서 마상에서 정확하게 아홉 발을 쏘아 모두 명중 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한 번 지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기회를 주었으니, 한 번 지나 갈 때 다섯 마리를 쏘아 죽여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빠른 명사수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어깨의 화살 통에서 다섯 대의 화살을 뽑을 시간이 없었다.

“만약 네 화살에 네 군사가 죽어도 할 수 없다. 멧돼지가 살아남는 놈이 있다면 그 숫자만큼 네 부하의 목숨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말을 달리다가 멈추거나 천천히 가면서 활을 쏘면 여기 둘러선 내 부하 1천 명이 모두 너를 쏘아 고슴도치를 만들어버릴 것이다.”

홍득희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활과 창을 든 여진 병사와 달달인들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홍득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홍득희는 이 난제를 어떻게 해낼까 하고 생각했다.

“내 제안을 거부하면 저 포로들은 모조리 화살받이가 될 것이다.”

범찰은 흥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참으로 희한한 제의를 한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홍 두령. 절대 응하지 마시오. 저들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모두 죽일 것입니다.”

천시관이 소리쳤다.

“홍 두령, 안됩니다. 우리를 그냥 죽이라고 하십시오.”

백규일도 흐느끼면서 소리쳤다.

“말과 활을 주시오.”

마침내 홍득희가 결심했다.

“과연 배짱이 크군, 얘들아, 홍 두령을 풀어주고 말과 활을 돌려 주어라.”

범찰이 상기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홍득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홍득희는 화살 아홉 발을 전통에서 빼 왼쪽 옆구리에 찼다.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십년을 함께 해 온 백마에 올랐다. 

말을 천천히 몰아 오십 보를 갔다. 출발점에 도착한 홍득희는 말뚝에 묶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맨 앞에 동생 석이가,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 말뚝에 천시관과 백규일이 묶여 있었다.
범찰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여진 병사와 달달족의 얼굴 역시 잔뜩 굳어 있었다.

홍득희는  한 줄로 묶여 있는 행렬에서 거리를 어느 정도 두어야 할까 생각해 보았다. 가까이로 지나가면 실수 없이 정확히 쏠 수는 있으나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한 번에 다섯 발을 쏘기가 어렵다. 너무 멀리 지나가면 표적을 향할 기회는 많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목표물로부터 20보 정도 떨어져 달려야 다섯 발을 쏠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홍득희, 준비되었느냐?”

범찰이 소리쳤다.
홍득희는 활을 잡은 왼손에 화살 두 대를 함께 쥐었다. 화살과 활의 중심을 함께 쥔 것이다. 그리고 시위를 당길 오른손에도 화살 세 대를 쥐었다. 화살 한 대는 시위에 걸어서 엄지와 검지로 당길 태세이고, 나머지 화살 두 대는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쥐고 있었다. 화살을 연속으로 쏘기 위한 기묘한 방법이었다. 화살 한 대를 쏘고 나서 즉각 다음 화살을 연속으로 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화살 두 대 정도는 이런 방법으로 쏜 일이 있지만 다섯 대를 모두 이러한 방법으로 쏘아 본 일은 없었다.

“네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부하들을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어때?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내 첩이 되어 나를 돕지 않겠느냐?”

범찰이 마지막 제의를 했다.

“추장답지 않은 말이오. 한 번 약속한 일을 뒤집으려는 거요? 약속은 틀림없이 지켜야 합니다.”

홍득희가 여진 말로 대답했다.

“좋다.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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