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54] 흔들리는 왕의 마음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54] 흔들리는 왕의 마음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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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에 있는 박이녕(朴以寧)절제사가 김 공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까?”
“내가 종성에 있을 때 와서 하룻밤 자고 간 일이 있습니다. 밤새우며 경흥의 야인 방어 문제를 협의했지요.”
“그런데 빨리 돌아가 임무를 보려는 박이녕을 붙잡아 놓고 밤새도록 함께 주지육림에 빠져 술을 퍼마시고 애첩들과 관기를 불러 진탕 놀았다고 하더군요.”
“박이녕을 빨리 돌아가라고 재촉하지 않은 것은 잘못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지육림에 관기들과 진탕 놀았다는 말은 터무니없습니다.”

김종서는 기가 막혔다. 박호문에게 원한을 살 일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호화 병영을 헐어버린 것밖에 없는데 그 일을 가지고 완전히 자신을 매장 하러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오해를 살 만한 다른 일이 있다면 박호문이 한성으로 떠난 뒤 후임이 올 때까지 관물을 모두 봉인하여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한 일이 있었다. 이는 절제사가 바뀌는 혼란을 타서 비장들이나 다른 관속들이 관물을 축낼까봐 한 조치였다. 그러나 박호문은 자기가 처리하던 관물을 봉해놓고 횡령한 것을 캐내기 위해 한 짓이라고 오해하고 비난했다.

“박이녕 절제사와 밤새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나 박이녕이 술을 할 줄 모르는데 무슨 주지육림입니까? 지금 파저강과 두만강 이북은 오랑캐 세력이 이합집산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어 정세가 급박합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새벽닭이 우는 줄도 몰랐습니다. 밤을 꼬박 새운 박이녕 절제사를 이튿날 일찍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본영으로 쫓아 보내자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종서는 그때 일을 생각할수록 박 절제사에게 너무 몹쓸 짓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서는 그때 일을 더듬어 말을 이었다.

“그날 밤, 술과 고기가 진영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술과 고기라고?”

황보인이 의아해서 물었다.

“조로 빚은 술 두 독과 연어 30마리, 산 꿩 10마리가 있었습니다.”
“.... ”
“조로 빚은 술은 병사들이 여진족과 함께 화전을 가꾸어 거두어들인 수확 중에서 병사 몫으로 보내온 것으로 빚은 것이었습니다. 연어 30마리는 동해쪽에 이주해 온 경상도 어민들이 병영에 기부한 것입니다. 산꿩은 병사들 훈련을 위한 사냥에서 얻은 수확이었습니다. 그날 밤 진영의 모든 병사들이 모여서 술과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저와 박이녕 절제사는 병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먼 빛으로 보며 흐뭇해 했습니다.”

“그런 일을 그렇게 왜곡시켜 모함을 했구먼. 쯧쯧쯧. 몹쓸 사람.”

황보인이 몇 번이나 혀를 찼다.

“이외에도 오랑캐 추장들을 포용하지 않고 폭압으로 대해 북벌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논리를 조정에 퍼뜨려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황보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전하께서도 박호문의 도끼질에 솔깃해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예? 전하께서도요?”

김종서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한편 경복궁에서는 김종서에 대한 의혹이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박호문의 끈질긴 모함에 세종 임금의 마음도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호문이 아무리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도 명색이 무인인데 터무니없는 말을 저렇게 끈질기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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