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7] 누가 산적 두목을 사랑...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47] 누가 산적 두목을 사랑...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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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말해 보아라.”
“저 오늘밤 여기서 자고 싶어요.”

홍득희의 얼굴이 갑자기 홍당무가 되었다.
홍득희가 김종서와 한 방에서 자겠다고 대담하게 말을 꺼낸 것이 즉흥적으로 불쑥 나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오래 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한 것 같았다. 
홍득희는 빨개진 얼굴을 푹 숙였다. 거친 화적들을 거느리고 산채에서 두목으로 군림한 여장부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다니.

“너도 이제 과년했으니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할 텐데...”

김종서가 홍득희의 속뜻을 짐짓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저는 시집가지 않고 평생 혼자 살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누가 산적 두목을 사랑하겠습니까? 저는....”

홍득희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인지 해보아라.”
“저어....”

홍득희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저어... 아저씨, 저 오늘밤 아저씨를 모시고 싶어요. 저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저는 아저씨가 아이 하나만 가지게 해 주신다면 평생 혼자서 살 생각입니다. 아저씨, 저 오늘밤 여기서 아저씨를 모시게 해 주세요. 오늘 하룻밤만....”

김종서로서는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 평생 처음의 일이었다. 홍득희 같이 심지가 굳은 여자가 저렇게 나올 때는 하루 이틀에 결심한 것이 아닌 것으로 짐작되었다. 
김종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홍득희가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김종서는 손을 뻗어 천천히 홍득희의 고개를 받쳐 올렸다. 김종서의 손도 가늘게 떨렸다. 

“이 방에서 자고 싶다면 그렇게 하여라.”

김종서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저씨!”

홍득희가 김종서의 품에 와락 안겼다. 
홍득희의 옷고름을 푸는 김종서의 손이 더 떨리기 시작했다. 김종서는 젊을 때부터 몸이 아파 별거하다시피 지내는 아내 윤 씨 부인의 얼굴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김종서는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홍득희를 품에 다시 안았다.
막사 밖에는 거센 삭풍이 바람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김종서의 숨결도 북풍만큼 가빴다. 

이튿날 아침 김종서가 눈을 떴을 때 홍득희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내가 어젯밤에 무슨 짓을 했나?’
김종서는 아찔한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득희와 내가 나이 차이가 얼만데...’
홍득희는 김종서보다 스물여덟 살이나 적었다. 그러나 나이 차이는 두 사람의 하룻밤에 아무 장애가 되지 못했다. 사다노에서 아홉 살짜리 어린 소녀였던 홍득희가 어제 밤에는 농염한 처녀가 되어 김종서를 원했다. 

“나으리, 일어나셨습니까?”

밖에서 여자 말소리가 들렸다. 

“들어 오너라.”

김종서가 급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김종서가 나간 뒤 머리를 땋은 애송이 처녀가 들어왔다. 관비로 와 있는 여종 경비(境婢)였다. 경비는 원래 회령 선비 효충의 막내딸인데 아버지가 죄를 지어 관비로 쫓겨와 있었다. 그래도 관기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경비는 회령에서부터 김종서를 따라왔다. 원래 함길도 감영에 딸린 관비였는데 회령으로 배치되었다가 김종서를 수행하게 되었다.
서울 3군부를 비롯한 군영에는 남녀 관노와 관비가 몇 명씩 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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