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1] 벌벌 기어나온 이방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31] 벌벌 기어나온 이방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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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이 실의에 빠진 김종서를 위로했다. 김종서는 송희미의 공로로 모든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홍득희를 만만하게 본 것이 실수입니다. 그런데 줄을 잡고 있던 중군 군사는 아군도 적군도 분별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양정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부상한 병사는 없느냐?”

김종서가 양정에게 물었다.

“기마병 두 명이 팔이 부러지고 말 한 필이 절룩거립니다. 그만한 게 다행 아닙니까?”
“그물 작전이 묘하긴 묘한 거야. 아군을 잡아서 그렇지.”

병사들 사이에는 김종서를 비웃는 소리가 나왔다. 
산등성이를 넘어간 홍득희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금천 쪽으로 갔을 것입니다. 개경서 평양으로 가자면 금천이 가장 가까운 길이거든요. 명나라 사신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고요.”

유자광의 추측이었다.

“빨리 척후병을 보내 홍패의 자취를 찾아라. 내 생각에는 해주로 가기 위해 한촌으로 향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송희미의 복병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김종서는 상상하기 싫은 말을 했다. 만약 송희미의 복병이 홍패를 잡는다면 김종서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되는 셈이었다.
유자광은 즉시 척후병을 내보내 홍패의 흔적을 추적했다. 그러나 산악길이 익숙한 산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편, 솔채의 함정을 피해 나간 홍득희는 곧장 산을 넘어 염탐으로 향했다. 그곳은 유자광이 추측한 금천, 개경 길도 아니었고, 김종서가 추측한 한촌, 해주 쪽도 아니었다.
염탐은 해주의 서북쪽으로 동쪽에 있는 한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홍득희는 계속 달려 오후 늦게 해주성에 도달했다.
해주는 텅 비어 있었다. 송희미가 모든 군사를 이끌고 김종서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한촌에 갔기 때문이다.
홍득희와 산적 떼는 마치 개선군처럼 텅 빈 해주 성내로 들어갔다. 영문을 몰라 구경나온 백성들을 아랑곳 않고 홍득희는 목사의 집무실인 동헌으로 들어갔다.

“아전들을 모두 모으시오!”

홍득희는 동헌 마루에 올라서며 명령했다. 산적들이 기마를 앞세우고 들이닥치자 동헌에 남아있던 아전들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육방 관속을 모두 찾아내라.”
송오마지가 수하들을 독려했다.
얼마가지 않아 아전들이 모두 잡혀 왔다.
산적들을 만난 목사 관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육방 관속들은 도망가기 바쁘고 관노와 관기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혼란도 잠시, 육방 관속 대부분이 산적들에게 잡혀 동헌 앞에 꿇어앉는 신세가 되었다.

동헌 마루 위에 앉은 홍득희는 마치 점령군의 장군이나 변복한 암행어사처럼 보였다. 

“이방이 누구냐?”

홍득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당에 꿇어앉은 관속들을 보고 호령했다. 옷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잡혀온 관속도 있었다. 모두 입을 다문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이방은 빨리 고신하라.”

송오마지가 소리를 질렀다.  

“예, 쇤네가 이방입니다.”

관속 한 사람이 벌벌 기어서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해주목 이방 송조명입니다.”
“송가라고? 송희미와 친척이냐?”
“예. 먼 친척입니다.”
“원래 이 관아에 있었느냐?”

홍득희가 물었다.

“아닙니다요. 사또, 아니 아저씨가 부임할 때 고향에서 농사짓다가 왔습니다.”
“뭐야? 제 피붙이 데려다 감투를 씌웠구먼.”
석이가 거들었다.
“호방은 누구냐?”
“예. 저 호방 박정구 고신입니다요.”
호방이 벌벌 기어서 앞으로 나와 이방 옆에 꿇어앉았다.
“비장들은 모두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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