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실록소설 11] 대호(大虎) 김종서
[이상우 실록소설 11] 대호(大虎) 김종서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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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김종서가 말을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자 임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도당에서도 의견이 서로 다른 모양이오. 형님에 관한 일은 예전 세자 시절부터 공론이 극단적으로 갈렸으니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공정하게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하오.”

“명심하겠습니다.”

김종서는 대궐을 나오면서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임금은 뒤에 한 말, 공론이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이 일로 인해 어느 한쪽 세력에 휘말리거나 원한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서는 이튿날 사헌부로 나가 대사헌 앞에 고신하고 왕명대로 양녕의 행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좌군부 진무소에 가서 군비 윤이 모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윤이 모녀는 대물림을 해온 관비였다. 어미 종 쌍가메는 원래 중추원에 있다가 태종 때 3군부를 의흥삼군부로 정비하면서 좌군 진무소에 배속되었다. 윤이의 아비는 같은 관노였다.

윤이는 나이 열여섯이지만 인물이 뛰어나 총제사의 총애를 받아 측근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근래 양녕대군의 눈에 띄어 입궐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어디에 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김종서는 양녕의 근수인 이오방을 불렀다. 사헌부로 불러서 닥달을 하는 것이 보통의 조사 방법이었으나, 일을 은밀히 처리하기 위해 육조거리 서쪽의 주막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사헌부에 있는 김종서요. 듣자 하니 양녕대군을 가까이서 뫼신다고 해서 좀 여쭤보려고 만나자고 하였소.”

이오방은 대낮부터 얼굴에 술기운이 올라 보기가 거북했다.

“허허허, 당신이 김종서 지평이오? 궐내에 여러 가지 소문이 돌더군요.”

이오방은 안하무인격으로 거만하게 아랫배를 내밀며 말을 했다.

김종서는 비위가 상했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받아주었다.

“내 소문이 궐내에 돈다구요? 그래 어떤 소문이오?”

“우리 주군인 양녕대군 마마를 헐뜯고 다닌다는 소문이오.”

이오방은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무슨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오. 내가 목숨이 몇 개나 된다는 소문은 나지 않았던가요?”

“허허허. 너무 마음에 두지는 마시오. 우리 마마는 워낙 천하의 호걸 아닙니까? 그런 험담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헌부 나으리가 할 일 없이 나 같은 백수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용건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김종서는 한참 뜸을 들인 뒤에 입을 열었다.

“좌군 군비 윤이 모녀는 지금 어디 있소?”

이오방은 움칫하며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노형이 감추어 두었소? 관아의 재물을 사사로이 숨겨두면 도적으로 몰립니다.”

관청에 소속된 노비는 나라의 재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난 모르는 일이오.”

이오방이 목소리를 높였다.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다는 기가 죽어있었다.

“나라 재산은 비록 주상 전하라 할지라도 사사로이 빼내지 않는 법이오.”

“그럼 김지평이 우리 마마와 맞서보겠다는 거요?”

이오방이 갑자기 화를 냈다.

“노형, 지금 노형이 좌군 진무소 재산을 양녕대군 마마께서 가져갔다는 뜻으로 말한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오?”

이오방은 자신이 얼떨결에 실수한 것을 알아차리고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노형, 빨리 윤이 모녀의 행방을 대시오. 그렇다면 내 노형한테 듣지 않은 것으로 할 것이오.”

김종서의 말에 한참 생각하던 이오방이 입을 열었다.

“나를 만나지 않은 것으로 하면 알려 드리리다.”

“좋소.”

“연화방 기생 기매의 집에 있을 것이오.”

“아니. 남자로 변장해서 대궐 안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소. 내가 알기로는 노형과 구중수가 앞장섰다고 하던데.”
“내가 앞장선 것은 아니오. 마마께서 워낙 서두르시기에... 구중수가 한 짓이오.”

이오방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이 커져 간다고 생각했는지 발뺌하기에 바빴다.

“좋소. 구중수가 저지른 일이라 합시다. 그런데 궁중으로 들어간 모녀가 어떻게 기매의 집으로 갔단 말이오?”

“그걸 꼭 알고 싶으면 한명회를 만나보시오.”

“한명회라니오? 그게 누구요?”

“한명회를 모르시오? 경덕궁 칠삭둥이 말이오.”

 김종서는 이오방을 보내고 한명회를 만나기 위해 경덕궁으로 갔다. 한명회(韓明澮)는 큰 키에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육집이 좋아보였다. 어머니 배속에서 일곱 달 만에 나왔다고 해서 칠삭둥이, 또는 칠푼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외관으로는 풍채가 좋은 게 전혀 칠푼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승을 지냈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친척 손에서 자랐다.

과거에 나올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 음덕을 빌어 겨우 경덕궁에서 말단 관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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