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6] 보물 상자 여진문자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26] 보물 상자 여진문자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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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는 이 미로에서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홍득희에게 운명을 맡기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한심스러웠다.

“아저씨가 빨리 본진영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서두르겠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홍득희가 말을 마치고 석이를 돌아보았다.

“오마지 아저씨와 그것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석이가 밖으로 나갔다가 송오마지와 함께 들어왔다. 송오마지는 김종서에게 절을 넙죽하고는 들고 온 상자를 앞에 내놓았다.

“오마지도 이젠 나이가 들었구나. 벌써 흰 머리카락이 보이네.”

김종서가 오마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새치입니다. 아직 제 나이는 나이라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송오마지는 커다란 손으로 뒷덜미를 긁으며 겸연쩍어했다.

“열어보시지요.”

홍득희의 말이 떨어지자 송오마지가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두루마리 문서 같은 것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것이 다 무엇이냐? 산적들이 웬 문서를 갖고 있느냐?”

김종서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아저씨를 돕기 위해 석이와 오마지 아저씨가 열심히 수집한 탁본과 고서들입니다.”

“탁본?”

“아저씨가 이전에 사다노에 오신 이유는 임금님의 새 문자 창조를 돕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 중에서도 여진족 문자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저씨 생각을 하며 평소 눈에 띄는 대로 모아 보았습니다.”

김종서가 상자 속의 문서를 꺼내 보았다. 비석에서 떠온 탁본과 낡은 고문서 여러 점이 있었다.

“이 탁본은 여진 문자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진족의 족장들이 차지한 지역에 경계 표시로 비석을 더러 세웠는데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탁본을 했습니다.”

송오마지가 설명했다.

“여진 비석 외에도 고려 때 세운 것으로 보이는 절과 국경지대의 한문 비석도 탁본을 했습니다. 아마도 아저씨가 말씀하시던 윤관 장군과 관련된 국경 경계 비석일지도 모릅니다.”

홍득희의 설명을 들으며 김종서는 한문으로 된 비석 탁본을 살펴보았다. 탁본 기술이 조악하고 비석이 낡아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자료임이 틀림없었다. 특히 여진족 문자는 세종 임금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물건이라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다.

“너희들이 큰일을 했구나.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고 도우려고 했다니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쓸모가 있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저희들은 그저 장님이 장어 잡듯이 모아두었을 뿐입니다.”

석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탁본과 문서를 들어내자 상자 바닥에 가죽 띠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이건 무엇이냐?”

김종서가 낯익은 가죽 띠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홍득희가 가죽 띠 두 개를 끄집어내서 펼쳐 보였다.

“이건 아버지가 남긴 노루 가죽 띠인데 여기 아저씨가 저희 이름을 ....”

홍득희는 갑자기 울음이 복받쳐 말을 흐렸다.

가죽 띠에는 한자로 홍득희(洪得希)와 홍석(洪石)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김종서는 남매의 이름을 지어줄 때 써주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니, 이게 언제 일인데 아직 간직하고 있단 말이냐?”

김종서가 가죽 띠를 만져 보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수많은 싸움터를 쫓아다니면서도 이 보물만은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아저씨를 만나면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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