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19] 산적 여두목
[이상우의 실록소설 대호(大虎)김종서 19] 산적 여두목
  • 이상우 언론인·소설가
  • 승인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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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와 병조에서 동시에 세종 임금에게 급보를 올렸다. 의정부도 거치지 않고 황해도 감사로부터 온 급보는 명나라로 가는 봉물짐이 산적에게 털렸다는 내용이었다.

세종 임금은 즉시 김종서 좌대언을 불러 사건의 내막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김종서가 여진족 문자를 연구하러 경원군 회령에서 돌아온 지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김종서는 우선 이조 판서 허조를 찾아갔다.

“김 승지가 여기까지 웬일이시오?”

판서 허조는 김종서를 반가이 맞이했다.

“전하의 명을 받잡고 왔습니다. 황해도 산적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 황해 감사가 보낸 장계의 원본이 있으니 읽어보시지요.” 

허 판서가 큰 봉투에 든 두툼한 서찰을 내주었다.

서찰을 받아 읽는 김종서의 얼굴이 점점 긴장되어 갔다.

“아니, 산적의 두목이 여자란 말씀입니까?”

“놀라셨습니까? 나도 처음엔 놀랐습니다. 젊은 여자가 산적 두목이라니.”

서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황해도 강음현 탑재고개.

이른 새벽 역졸 10여 명의 호위 속에 명나라로 가는 봉물짐 행렬이 고개를 막 올라 섰을 때였다.

“꼼짝 말라. 봉물짐과 노새를 모두 두고 가거라!”

갑자기 고개 위 숲속에서 나타난 산적 대여섯 명이 봉물짐 앞을 가로막았다.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봉물짐 일행을 지휘하고 가던 패두가 앞에 나섰다.

“우리는 황해도 화척이다. 순순히 봉물을 놓고 가지 않으면 모두 목을 잘라 저 소나무에 걸어둘 것이다.”

화척이란 천민의 일종으로 백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호위 역졸 10여 명을 거느린 관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놈들을 모조리 베어라.”

패두가 마상에서 칼을 빼들었다. 산적 떼와 백병전이 벌어질 찰나였다.

“잠깐 멈추어라.”

그때 백마를 탄 산적 하나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비단을 찢는 듯한 목소리, 분명 여자의 목소리였다. 백마 위에 앉은 산적은 남자 옷에 붉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지만 자태가 분명히 여자였다.

“너는 또 웬놈이냐?”

패두가 앞으로 나섰다.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다. 그 봉물짐은 그대로 두고 빨리 돌아가거라. 봉물짐은 우리가 가져다 쓸 곳이 있다.”

“저놈 봐라. 아니 계집년 아니냐?”

“계집이라니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우리 두목님이시다.”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산적이 말했다.

“뭐라고? 저년이 너희들 두목이라고? 너는 저년의 졸개냐?”

“내 이름은 송오마지다. 빨리 이곳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나이든 산적이 점잖게 말했다. 

“에잇!”

그때 호위 군졸 한 명이 칼을 휘두르며 송오마지에게 덤볐다. 그러나 칼을 써보지도 못하고 송오마지의 발길질 한 번에 나가 떨어졌다.

“이놈 봐라!”

이번에는 패두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패두는 군졸과는 달랐다. 날쌘 칼날이 송오마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쨍그렁!”

그 순간 강렬한 금속성과 함께 패두의 칼이 하늘 높이 튕겨 올라갔다. 정말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패두의 칼끝이 송오마지의 목을 찌르기 직전 공중에서 다른 칼이 날아들어 패두의 칼을 쳐내 버린 것이다. 

“우와!”

모두 입을 크게 벌렸다. 패두의 칼을 공중으로 튕겨 오르게 한 것은 백마 위에 앉아 있던 여두목이었다. 여두목은 말에서 튀어 올라 공중에서 360도로 돌면서 패두의 칼을 쳐내고 한쪽 발로 패두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다시 반대로 몸을 한바퀴 틀면서 옆에 있던 군졸도 쓰려트렸다. 여 두목은 왼손으로 오른발의 발바닥을 치면서 오뚜기처럼 백마 위에 다시 올라갔다.

땅바닥에 쓰러진 패두는 넋이 나간 채 여두목을 올려다보았다.

“선풍각(旋風脚)을 쓰다니!”

선풍각이란 조선 무사들의 전통 권법 중의 하나로 매우 경지가 높은 고급 기술이었다. 더구나 마상에서 선풍각을 이용해 지상의 상대를 쓰러트리고 다시 마상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는 최고 경지의 무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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