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안 모자란 인터뷰] "나는 배우다" 연기 인생 50년 김호영...와인향 나는 김치 연기 화제
[이철안 모자란 인터뷰] "나는 배우다" 연기 인생 50년 김호영...와인향 나는 김치 연기 화제
  • 이철안 미학칼럼리스트
  • 승인 2021.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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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연기 시작해 내년 50년 맞아 연극'김치' 무대에 올라가 존재감 과시
표재순 연출 MBC일일극 '예성강'서 배우로서 이름 알려 전천후 배우
배우 김호영
탤런트 김호영은 내년 배우인생 50년째를 맞는다. 72년 MBC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74년 드라마'예성강'의 주인공에 발탁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조선왕조500년 등 수백여편의 드라마, 연극, 영화에 출연했다. 현재 50주년을 기념해 연극'김치'를 통해 중년의 사랑을 연기하고 있다. @김호영

김호영. 그는 배우다. TV·연극·영화에서 그는 언제나 청춘이다. 어느 땐 아버지였고 연인이었다. 46년생. 1972년 데뷔해 올해로 49년째를 맞은 배우이다.

내년이면 연기 인생 50년이다. 반 백년이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연극‘김치’이다. 오는 12월 전남 나주에서 무대에 올라간다. ‘김치’는 남편을 잃은 나주댁과 이웃 이발소 주인과의 중년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그가 TV나 영화가 아닌 무대에 서는 것은 배우로서 연기의 감(感)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지난 9월 어느 날, 김호영과의 인터뷰를 약속했다. 약속장소는 그의 집 근처이다. 파주시 운정역 인근에 산다. 그래서 경의선 운정역에서 약속했다.

초가을에 만난 그는 프랑스영화 <남과 여 Un homme et une femme>의 남자 주인공인 배우 루리 트린티낭을 연상시킨다. 배우자를 잃은 파리 출신 두 남녀의 감정적 교감을 그린 영화이다. 66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남과 여>는 <남과 여2><남과 여 20년 후>로 제작됐다.

김호영에게서 김치 맛깔 나는 그의 연기에서 프랑스 와인향이 느껴진다. 잘 생기고 키 큰 외모 때문인 것이다.

우린 가볍게 식사를 마친다. 편의점 커피를 한잔 씩 뽑아 가을이 무르 익어가고 있는 가람도서관 옆 공원에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극 <김치>에서 중년 로맨스를 선보이고 있다. 젊은 시절 순정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김치>에서 보여주는 로맨스가 <남과 여: 여친히 찬란한>에서 보여준 장 루리 트린티낭을 연상시킨다. 사랑의 온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김치는 숙성의 과정을 겪으며 천상의 맛을 만들어낸다. 연극<김치> 역시 묵은지가 익어가는 과정처럼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나주댁과 사별하고 혼자사는 이발소 주인과의 농익은 사랑을 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연극 출연을 결정한 것은.

△배우의 고향은 무대이다. 카메라 앞에서나 무대에서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무대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환경이 훨씬 척박하다.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무대에 서는 것은 내가 배우이기 때문이다. 모든 배우의 꿈은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메라, 무대에만 서면 힘이 나고 행복하다. 천상 배우인 것 같다.

-76년 MBC 일일드라마<예성강>의 주인공을 맡아 한때 승승장구했다.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72년 MBC 탤런트 시험에 합격한 뒤 4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88올림픽 당시 총연출을 담당했던 표재순 PD가 연출을 맡았고 전양자, 조경환, 김상순, 한성전 등이 출연했다. 나는 당시 배우들에 평균 신장보다 훨씬 컸다. 때문에 카메라의 한 프레임에 잡히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실제 여배우와 투샷(두 사람이 함께 촬영하는 장면)바스트 숏(Bust shot)S에서 나는 반신만 나오고 여배우는 전신이 나오는 현상도 나타났다. 요즘 남녀 배우들은 모두 크지만 당시로선 큰 키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배우의 길을 택한 이유는.

△잠시 건축가를 꿈꾸었다.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다. 건축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의 울타리라는 개념으로 설계하고 완공한다. 거주 할 사람들의 취향을 배려하는 것이 좋아서 이다. 그러던 중 고교 학내 예술제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처음 접한 음악ㆍ무용ㆍ연극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후 배우의 꿈을 키웠다. 건축과 예술은 같다. 건축의 설계도와 같은 시니리오가 나오면 스탭과 연기자를 섭외한다. 그리고 벽돌을 쌓듯 카메라가 배우들의 움직임을 담는다. 마지막 건축을 준공하듯 시사를 하는 과정으로 끝을 맺는다. 건축에는 완공된 건축물이 주인공이듯, 영화나 드라마는 카메라 앞에서 선 배우가 주인공인 것이다.

-배우의 삶과 자긍심은?

△60년도 이전 연예인들도 ‘무에서 유’를 만든 경험을 카메라와 무대를 통해 표출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듯, 배우는 작품을 남긴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도 작품은 남아있다. 이러한 자긍심이 춥고 배고프던 60~70년대를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 연예계는 전쟁의 폐허, 그 자체 궁핍함이었다.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도 연극을 위하여 서로 각출하며 무대에 선 시기였지만, 연극을 하겠다는 열정이 가득 담겼던 시절이었다. 이 후 tv 등장은 배고픈 연예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케 하였다. 그는 배우라는 삶의 자긍심은 개인적 만족과 가정을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얻어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하였다.

배우 김호영의 힘은 가족이다. 72년 데뷔이래 50년간 연기활동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독교인인 그는 연기활동을 쉬는 동안 가족의 화합과 화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호영 배우의 가족 사진이다.@김호영 

-촬영이 없는 시간은?

△배우의 삶은 일반인들처럼 계획된 삶은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최대한 이용하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같다. 촬영이 없는 기간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나머지 시간에는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면서 지낸다. 최근 나이가 들면서 TV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TV출연이 없는 시간에는 영화, 연극 등 활동을 병행하면 공백을 극복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배역을 쫓아 다녔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카메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로서 역할을 꿈꾼다. 

-연예계는 대학로(연극), 충무로(영화), 여의도(탤런트) 등으로 나누어서 각자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대학로 연극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대학로의 연극이 한 단계 발전하는 진통기로 본다. 이런 현상의 진통기가 있어야 반성과 개선책이 나올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이 세계적 수준의 발전을 하고 있지만, 연극인은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연극인의 경제적 윤택함이 이루어졌을 때, 연극계는 자정능력으로 지금의 질타를 극복할 것이다. 후배 연극인에게 권면의 말은 배경과 배역에 대한 진진한 자세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자세의 자정 노력이 연극을 통해서 비춰 졌을 때 관객은 열광하고 호응 할거다.

-외모가 귀공자라서 전혀 고생을 안 했을 것처럼 비친다.

△신구 선배께서도 나를 보면서 “자네는 고생을 모르고 자란 것 같아?”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호의호식하며 자란 것은 아니다. 전후 세대 대부분이 겪었던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다. 당시 배우들의 출연료는 박봉이었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이유를 들어 위로를 삼기도 했다. 가족들에 희생에 의해 배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극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에 고민은 탈모이다.여러 편의 사극에 출연했던 배우로서 탈모에 관한 고민은 없었나.

△6~70년 대 연예계는 열악했다. 사극을 찍기 위해서는 상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갓을 비롯해 사모관대를 써야 한다. MBC-TV 사극<조선왕조500>를 찍을 당시 탈모를 경험했다. 용인 민속촌과 궁궐 등 야외 촬영하는 2~3일 동안 여름 때악볕 아래서 사모관대 차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빠졌다. 탈모가 걱정이 됐지만 경제적 지출 때문에 치료는 언감생심이였다. 오직 연기만 신경을 썼다. 모발관리는 그 다음 문제였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다모림을 만난 뒤 탈모 관리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젊었을 때 관리 못했던 모발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 사극에 출연하는 후배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배우에겐 머리카락은 중요하다. 이미지에 따라 배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Interviewee 김호영  1946년 출생 / 서라벌예술대학 학사 / 데뷔 1972년 MBC 4기 공채 탤런트/ 예성강, 사랑과 야망, 여자나이 45세, 산다는 것은?, 서울의 달, 육남매, 어사박문수, 제4공화국, 전원일기 (드라마), 쥐덫, 모래가 되어 사라지고, 아버지와 나와 홍매화, 못생긴 당신, 김치(연극), 미친도시, 마마 앤드 파파, 텔레파시 여행(영화)

Interviewer 이철안   다모림 CEO / 러시아를 유학하고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 가교 역할을 한 사업가이다. 현재 미학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철안의 모자란인터뷰'를 한국증권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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