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네 이웃을 의심하라 '크리피'
[신간] 네 이웃을 의심하라 '크리피'
  • 한국증권신문 기자
  • 승인 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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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평범한 사람이 괴물로 바뀌는 공포! 네 이웃을 의심하라

2011년 제15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마에카와 유타카의 장편소설 크리피가 도서출판 창해에서 출간됐다. ‘크리피(creep)’‘(공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이라는 뜻이다. 제목 그대로 소설은 현대인의 고립된 환경을 배경으로 일상 가까이에 도사린 공포와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의 연쇄를 오싹하게 그린다.

주인공 다카쿠라는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마흔여섯 살의 교수로 아내와 둘이 한적한 주택가에 산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경시청 형사 노가미가 8년 전에 일어난 미해결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한 후로 그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노가미의 실종, 스토킹을 당하는 제자, 앞집에서 일어난 화재와 불탄 집에서 발견된 의문의 사체, 그리고 옆집 소녀가 내뱉은 기이한 한마디.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공포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심사위원인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는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실로 기분 나쁜(크리피한) 이야기라는 말로 이 작품의 개성과 매력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크리피는 공포영화의 세계적인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오는 618일 일본에서 개봉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립된 주택가, 기묘한 옆집 남자와 도움을 청하는 소녀

일상 가까이에 도사린 공포와 상상을 초월하는 악행이 덮쳐오는 사이코 미스터리

소설의 초반은 다카쿠라의 일상이 기묘한 일들과 얽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린다. 먼저 니시노라는 옆집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 베일에 싸인 듯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는데, 이런 의혹은 몇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더 큰 의문과 불길함으로 증폭된다. 그런가 하면 노가미는 8년 전 히노 시에서 행방불명된 가족의 주거 환경이 다카쿠라의 집 주변 환경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학교에서는 논문을 지도해주고 있는 제자가 남학생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와중에 홀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을 수사하던 노가미는 다카쿠라를 만난 이후 갑작스럽게 실종되고 고령의 모녀가 사는 앞집은 한밤중에 불길에 휩싸인다.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모녀의 시신 외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한 구가 더 발견된다.

이 모든 일들이 처음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다 이야기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여러 갈래의 사건들이 하나의 중심점을 향해 밑바닥에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태가 급변한다.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화재 사건 이후, 니시노의 딸이 다카쿠라의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듯이 한 말은 의미심장한 반향을 일으키고, 노가미의 후배 형사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준다. 옆집 사람의 생각지도 못한 맨 얼굴이 드러나는 동시에 피비린내 나는 폭주극이 펼쳐지기도 한다. 다카쿠라가 소름 끼치는 선물을 받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단숨에 사이코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이윽고 교활한 범죄자의 실상이 드러나고 범인과의 전면 대결이 시작된다. 그러나 범인의 신원이 밝혀짐과 동시에 이야기는 혈연관계로 넘어가면서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작가의 노련한 감각이 감탄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이러한 솜씨를 두고 칼럼니스트 가야마 후미로는 사이코 미스터리이면서 범인과 형사(또는 탐정)의 대결을 그린 수사소설에 그치지 않고, 기이한 범행과 독특한 범인이 자아내는 크리피한 공포를 맛보게 한다.”고 찬사를 보낸다.

악의 천재라 불리는 자가 벌인 가공할 범죄와 수많은 희생자들. 과연 도주 중인 범인을 붙잡아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사건에 휘말린 범죄심리학자에게 탐정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로 하여금 범인을 추적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윤리관과 인간애는 이상 범죄자가 초래한 인간 지옥도 속에서 오래 기억될 가슴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현대인의 고립과 단절을 이용한 범죄, 당신은 그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고립되고 단절된 현대인의 생활환경에 주목하고 그러한 환경이 범죄를 야기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이웃의 존재도 모르고 이웃과 아무런 교류 없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취약한 인간관계는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옆집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알아채지 못한다. 평범한 이웃이 괴물로 바뀌는 공포. 크리피의 섬뜩한 모티프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언제든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마에카와 유타카는 1951년 도쿄에서 출생해 히토쓰바시 대학을 졸업한 후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스탠퍼드 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호세이 대학 국제문화학부 교수로 있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소설의 주인공 다카쿠라 교수에게 리얼리티가 있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의 일과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는 소설을 부업이라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학문 세계와 다른 종류의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두꺼운 벽을 돌파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그 의욕을 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저자 마에카와 유타카/ 역자 이선희/ 출판사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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