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의 ‘미군철수·인권문제’ 거론에 격분
카터의 ‘미군철수·인권문제’ 거론에 격분
  • 김길홍(언론인ㆍ한국미디어서비스 회장)
  • 승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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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의 추억과 비화②

카터의 미군철수·인권문제거론에 격분

박정희대통령이 서거한 197910월 우리나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힘들고 무거웠던 짐이 대통령 한분에게 집중되던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김영삼 신민당총재가 국회에서 공화당의 표결강행으로 의원직을 제명당한 것을 계기로 제1야당의 반정부투쟁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1016일부터 닷새동안 부산과 마산에서 10월 유신을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여 정국은 파국 일보 직전이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시비와 압력이 그해 6월 카터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하여 절정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나라 안팎으로 골치 아픈 정치문제와 외교현안을 앞에 두고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부담과 고뇌가 많았다.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비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 박 대통령과 미국 카터 대통령이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시민환영대회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1979.6.30)

차지철의 이상한 열병식에 이상(異常) 감지

집권 18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 정권은 짐짓 위기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장기집권의 강력한 권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정치권력에 편승한 주변의 힘있는 고위층들이 박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있어 체제의 변화나 동요가 감지되지 않았다.

적어도 정치부기자였고 청와대 출입기자 8년의 경력을 가진 필자의 단순한 직감은 뭔가 이상하다는 위기의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등이 인근 경복궁 수도경비사령부 경비단 연병장에서 주관하는 경호실 국기하강식이 그같은 느낌의 단초가 됐다.

일과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쯤 정부의 장관급 인사, 국회의원, 권력기관의 장등 각계의 VIP급들이 열병식 단상에 도열하고 군기와 경호실기를 앞세운 장갑차등과 대통령 경호병력의 사열을 정기적으로 받는 특이한 의식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육공군의 고급지휘관의 얼굴도 보여 주목을 끌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도 한번 초청받아 이 광경을 직접 지켜봤다.

당시 사열을 받으면서 경례를 하는 차지철 실장의 복장과 모습은 나치시대의 지휘관을 연상하게 했다.

차 실장이 열병식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권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과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직간접으로 과시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고 기자들은 짐작했다. 경호실장이 호위무사인 자신의 본분에 어긋나게 최고권력의 전방위 실세로 부상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의 정치권력과 국정운영 방침 등이 정상적 절차와 계통을 밟지 않고 집행되고 행사되는 것으로 오해받는 행동을 차지철 실장이 앞장서 감행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차 실장은 외모부터 강하고 밀어붙이는 강골의 성격과 체취를 풍기는데 반해 9년 동안 최창수 비서실장을 맡아온 김정렴씨는 겸손하게 몸을 낮추는 전형적인 대통령 참모 스타일이다. 김 실장은 차 실장과 잘 비교되는 박 대통령의 쌍두마차였다.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에서도 밝혀졌던 것처럼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영삼씨 제명, 부마항쟁사건 대처 등 시국문제의 처리에 관해 강경대응을 주장했다. 집권여당인 공화당과 중앙정보부에서는 유연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과 정치의 담당 역할이 아닌 차 실장이 대통령의 후광을 빙자하여 권력내부의 알력을 부추기고 지휘계통의 혼선을 빚게 하는 월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와 국정의 전반을 다룸에 있어 담당 업무의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권의 실력자급 정치인과 권력기관의 수장들이 흉금을 터놓고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찬반의 의견을 모아 국가를 운영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기관의 수장들과 정권실세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그 상처와 피해는 나라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역사의 교훈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 1978년 경호실 창설 기념일을 맞아 열병식을 하고 있는 장면.

인권문제 압박에 사석에서 감정 폭발

카터 미국대통령은 전임대통령보다 더 강경하게 한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개선 조치를 박 대통령에게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796월말 한국을 방문한 카터는 우리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주한미군감축을 압박카드로 활용하면서 민족자주 의식과 감정이 투철한 박대통령을 자극하고 화를 돋구었다.

박 대통령은 유독 자존심이 강하다. 국민에게 국정지표를 자주(自主)자립(自立)자존(自尊)으로 제시할 정도로 민족자존 의식이 강했다. 한국현실에 비추어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인권문제와 정치민주화가 국력신장을 위한 능률과 속도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남북분단의 대립과 북한의 남침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민주화의 진행과정과 인권문제의 개선에 대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소신이었다. 이 같은 원칙을 고집하면서 미국의 국내정치문제 개입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류혁인, 김성진씨 등 대통령수석비서관들은 박대통령의 이같은 생각을 대미외교와 국내홍보에 적극 반영했지만 야당과 재야의 민주화 투쟁은 더욱 세를 얻어 격렬해졌고 미국의 압력과 견제는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인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로 기억된다.

서울 근교에서 토요일 골프를 마친 대통령이 저녁때 청와대로 귀저하면서 청와대 테니스코트에서 큰따님 근혜양과 같이 테니스를 치던 기자단을 함께 본관 식당으로 불러 올렸다.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오랜만에 자연스런 비공식 술자리에 참석한 박대통령은 좀 취기가 오른 듯 보였다. 배석한 술 잘 안하는 차지철 경호실장에게예수 믿는 지철이도 한잔하라고 막걸리잔을 건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한미간의 현안을 설명하고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주한미군 한국주둔이 한국의 안보를 위한측면도 있겠지만 미국의 동북아정책에 부합되는 자국의 국익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미군감축과 인권문제에 관한 미국의 억지 주장과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전망과 재선을 노리는 카터를 신랄하게 질타했다. “주한미군 철수하라면 하라지, 절대로 그렇게는 못할꺼야라고 분석하고 카터 아니라 누가 와서 얘기해도 내 입장은 변함없다. 한국에서 나는 내뜻대로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덧붙여 한국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권위와 권한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은 취중에 주한미군 철수와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에 인간적 고뇌와 분노의 감정을 숨김없이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모임이 끝나 식당을 나설 때 수행하던 참모에게 종전의 태도와는 180도 다르게 특별한 외교지침을 명령했다.

외무부와 미국대사관에 훈령을 보내 미국의회와 정부 요로에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우리 쪽의 분명한 입장과 방침을 폭넓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외교교섭과 활동을 전개하라고 당부했다.

개인적 감정은 자제하고 국가이익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서 특유의 냉철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박 대통령의 또다른 면모를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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