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의 셀시미학]  레이스 드로잉- 백색산수 – 이윤정 작가의 ‘마음과 풍경을 잇는 끈’
[김은숙의 셀시미학]  레이스 드로잉- 백색산수 – 이윤정 작가의 ‘마음과 풍경을 잇는 끈’
  • 조경호
  • 승인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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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작가와 필자는 한때 우린 토요일마다 동양 미술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들었던 모 연구회의 동기였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젊고도 건강했던 시간이었으나 '소는 몰고 말은 끈다.'는 이치가 내 것으로 체득되기까지 버퍼링이 있던 풋내기 시절이었던 것 같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엄마, 사회에서는 작가와 때때로 선생의 역할, 그 어느 것 하나 본인의 이름이 견고히 얹힐 곳은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퍼런 시간이 우리 곁을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때의 우리는 열정만이 부자였던 이름들이었던 것 같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이다. 사회 현상이나 관계에 대한 한계에 직면하면서 초래되는 것들을 극복하거나 해결해가며 소진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여겼다.

이윤정 작가와 인연은 이 십여 년이 넘는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에겐 적극적인 접점이 없었다. 관계 속의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안으로 시선을 돌려 살아내고 있었던 간극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짠했고 가치로웠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산재한 것들은 훈장이 되던지, 곪아서 도려냈던 지 그렇게 한 시기가 저물었고, 도낏자루는 썩어있었다.

그녀가 16번의 개인전을 치르는 동안 세 번 전시를 봤다. 첫 번째 전시부터 자료도 읽고 기회가 있어 전시에 대해 몇 번 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황금색으로 가장자리 선을 그린 중첩된 까만 띠는 안과 밖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끝 간데없는 리본 더미가 그려졌고, 설치되었다. 고단함이 엄습하며 이입되는 감정에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그 후, 작가는 산행하던 히말라야의 준령을 보며 동양화의 준법을 표현할 띠가 보였다고 했다. 줄곧 화두를 놓치지 않았던 작가에게 띠가 영감을 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꽃 모양이 기계식으로 짜진 레이스 띠에 물감을 적셔 탁본처럼 화선지에 찍어내어 산의 모양을 만들었다. 마음에만 존재하는 이윤정의 산을 구현한 것이다. 

또한 통상적으로 사각이나 원으로 구성된 화판이나 프레임을 벗어나 그림에서 이미지와 여백을 레이저로 커팅해서 분리했다. 부조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심상에 존재하는 동양화를 구현해 놓고, 실제에 닿으려는 듯 평면에서 융기된 화면을 위해서 애쓰는 작가의 상반된 심리가 흥미로웠다.

동양화에서의 산의 배경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물 또는 하늘이 된다. 서양화의 랜드스케이프와 다른 산수화 개념이다. 장대하기 그지없는 산은, 이후 새와 구름도 등장하고 발등에서 찰랑댈 것 같은 물도 그려진다. 이상향처럼 펼쳐졌던 선경은 평화롭고도 유하게 현실로 안착해가는 느낌이다.

레이스 띠는 아예 미싱으로 박음질해서 산의 준령도 되었다가 꽃이 되기도 하는 변화와 확장의 오브제로 기능한다. 근거리에서 보니 레이스를 중첩해서 볼륨있는 선에서 입체감도 보인다. 부조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평면에서 이미지를 떼어냈던 실험이 더 적극적인 화면으로 진화되는 느낌이다.

마음으로 오르고 또 오르며 극복하려 했던 수많은 봉우리를 평면인 배경으로부터 오려내어 획득한 그녀만의 장대한 산으로 걸리기까지, 그 지난한 과정을 감내한 이유는 비단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욕망과 의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동양화 전공이었으니 먹으로 선하나 그려놓았대도 산으로 보였을 텐데 고단을 동반하는 이윤정의 화법에서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무언의 의지가 감촉된다. 

 산을 넘었으나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에서 직면한 미션을 작가는 화면에서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워 풀어갔다는 느낌이다. 입시 때 학구열처럼 증거된 전시장에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녀에게 산은 무엇이었을까? 전시장에 걸리고 표현된 이 모든 것들은 작가에게 무엇이었을까? 산악인들이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했던 것처럼 예술가들은 그렇게 표현해가며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힐링과 감동을 주는 필요한 존재들이 되는가 보다.

그동안 고군분투한 연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제자리를 잡아 보여서 좋았다고 쓰려다가 기쁘다고 쓴다. 대리만족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저마다의 역사지만 거시적으로는 비슷한 연배에 동성으로 공유되는 부분이 많아 '우리'라는 대명사를 자주 썼다. 작가가 만들어낸 자연 안에서 깊은 호흡으로 숨 쉬고 누렸다. 소리가 울리는 전시장이지만 개의치 않고 간간히 여학생 때 가시내들처럼 크게 웃었다.

“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 갈라디아서 6:7

사순절 기간에 보게 된 화우의 작업은 경건하기까지 했다. 시작과 끝을 아는 분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밖에 없다. 끝을 알면 인간이 이토록 교만하거나 두려움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 말했고 나는 구멍 난 가슴을 메워주는 꼭 맞는 퍼즐을 찾았다는 근황을 나눴다. 나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노라 덤덤히 말했는데 그녀에게 어떻게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림인지, 삶인지 우리는 그것이 지칭하는 주어를 명확히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레이스 드로잉 – 백색 산수'라고 명명한 작업 노트에는 동양화에 근간을 두었다고 작가는 썼다. 재료와 주제로 또 한 보따리가 될 것 같아, 마감 시간에 맞춰 히터를 끈 써늘해지는 전시장을 다음을 기약하며 총총 나섰다.

인생에 산재한 미션은 이름과 역할이 바뀌긴 하나 여전하다. 
모범생 캐릭터로 또박또박 주어진 것을 해내고,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스스로 잘 해내고 있다고 휠 것 같은 허리를 펴며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일까. 오르는 것인지, 저만치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인지 작가의 산자락 어디쯤일지 모를 풍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광화문 앞을 지나 체증의 소요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글쓴이 : 김은숙

김은숙은 아티스트 프로모션 그룹인 셀시우스와 (주) 머니아츠의 대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KAIROS UNIVERSITY에서 국제협력국장을 맡고 있다. 현재 그림, 글, 전시, 투자등 다양한 역할로 예술과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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