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셀시미학 ] 최혜인 작가의 양생...생(生), 땅으로부터
[김은숙 셀시미학 ] 최혜인 작가의 양생...생(生), 땅으로부터
  • 김은숙 아트셀시 대표
  • 승인 2024.0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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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살리라.

책상 앞에 있는 문구다.

난초 같은 섬세한 마음과 돌처럼 굳은 심지를 늘 동경했다.

그러다 깊은 땅에서 태어난 듯한 동자상을 만났다.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있는 돌의 장엄함 속에서 슬며시 드러난 동자의 따뜻한 얼굴들.

이 동자들은 무엇을 먹고 보고 생장하여 이런 표정으로 서 있었을까?

이들은 욕심없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내가 먹는 것은 곧 나다.

햇빛이 익힌 음식을 섭생하여 자연이 내 몸에 스며들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양분을 제공하는 식물과 이를 섭취하는 인간, 모든 생명체는 정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땅을 삶의 터전이자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한없이 넉넉한 엄마 품이다.

나는 달과 여성, 절기와 땅에서 수확된 곡식, 채소를 소재로 생명성을 탐구하면서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조화로운, 생활 속 '양생(養生)'을 추구한다.

작가 최혜인

최혜인 작가는 생명을 이야기한다. 땅은 흙이며, 흙은 생명의 중심이다. 흙을 가꾸는 것은 결실에 목적이 아닌 생명에 있다. 지구를 소생하는 마음으로 모든 자연 생명체에 애정을 쏟고 있다. 풀 한포기조차 허투루 대하지 않고 있다. 

예술가의 덕목은 창의성과 열정과 헌신, 감수성과 자기 계발, 성장, 인내와 근성이 있어야 예술적인 업적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의 성향과 경험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예술가의 독특한 개성과 스타일을 형성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최혜인 작가의 작품은 최근에 일본과 미국에서 작품을 접했다.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 전시라고는 하지만 화이트큐브에 익숙했을 작가에게 기(氣)가 만만찮은 광물인 동자상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콜라보처럼 어우러지는 상황이라 관심이 컸다. 

벽마다 컨셉있는 구성으로 예전의 작품들도 볼 수 있어서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컸다.  그림은 곡물과 과일, 채소 등 일상에서 늘 만나는 식재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성 들여 요리를 완성해가듯 살림과 작업의 가교가 되었을, 가족과 작가 자신의 양생을 말하는 작업을 찬찬히 따라가 보았다. 

커다랗게 그려져 강조라기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딸기부터, 강낭콩의 실루엣, 해파리처럼 투명하게 오버랩된 버섯들, 빽빽한 숲의 어느 한 컷처럼 표현된 브로콜리 등등 그림에 표현된 작가의 식물들과 현무암이 자리한 공간도 화성 어디쯤처럼 기묘한 분위기다.  재현을 벗어난 상투적이지 않은 작가의 화법은 전공과 무관하지 않게 형이상학적인 미감으로 안내한다. 

육신의 근간이 되는 먹거리에서 햇볕, 땅, 생명, 삶과 죽음, 영원과 찰나등 도에 이르는 이치까지 식물의 고유한 모양과 형태에 따라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을 상념들을 진지하게 전개해간 것이 학구적이라는 느낌이다. 빛이 생략된 듯 피토케미컬의 고유한 색깔과 형태와는 사뭇 다른 존재감으로 펼쳐져 있는 화면은 본질에 더 다가서는 장치가 되는 듯하다.

두 점 Two dots/리넨 캔버스에 아크릴/98x146cm/2013
따로 또 같이/ 장지에 들기름,먹, 안료/136x130cm/ 2006

오감으로 감촉되는 연한 식물성 사유는 땅의 숭고한 존재감과 자궁 같은 광활한 우주의 어느 공간으로 이끌어 전시장 반을 채우고 있는 동자상들은 그녀의 작품 배경 어디쯤에서 튀어나와 입체로 현현했다는 뜬금없는 생각마저 들어 구석구석 꽉찬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채도가 낮은 작품이 된 배경은 시공간을 짐작할 수 없고 광활하게 여겨져 적요하다.   
작품 명제가 '감자 속 사막'이다. 열매에서 '사막'을 느끼는 작가 무의식의 근원에 닿고 싶은 궁금증을 주는 것이, 재현에 목적하기보다 무의식의 어떤 파장이 이렇게 광활한 굴절을 덤덤히 전개하는 스펙트럼을 가져왔을까 싶어 그림과 작가를 오래도록 보게 만들었다.

화선지, 비단뿐 아니라 캔버스와 세라믹 등 동양화와 서양화등 각자 태생이 상이한 재료로 다양하게 표현이 된 작품들은 물성인 재료가 다름에도 한결같이 물기를 잔뜩 흡수한 장지에 붓질한 질감을 준다. 오랜 시간 미술가로 체득한 본인만의 화법이 구축된 이유이리라.

물컹하고도 슴슴한 간이 세지 않은 가지나물을 갓 지은 밥 위에 올려 들기름과 마늘 맛이 입안에 퍼지는 허기가 갑자기 몰려왔다.

두 점 Two dots/리넨 캔버스에 아크릴/98x146cm/2013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종자 맺는 모든 열매 맺는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이것이 너희의 먹을 양식이 되리라."

(창세기 1:29)

하느님의 창조 섭리는 사랑이다.

둥그런 만월이 두둥 떠오르는 날이면 작가의 많은 생각이었던 식물을 다듬고 데치며 나도 여전히 스스로와 누군가의 양생을 위한 주체로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길 막히기 전에 뮤지엄을 나서자며 밥해야 한다는 작가 말에 같이 크게 웃었다. 

21세기답지 않은 얘기였으나 매일 먹는 밥처럼 생명을 이어오는 숭고한 것들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는 예술가의 역할과 태도가, 표피적인 광택이 번들거리는 시대에 그림의 배경처럼 소란한 소요를 덮어주는 느낌을 받으며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최 혜 인 (崔憓仁)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박사( 201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석사(199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1994), 1997 Summer/fall Residency Program (drawing, mixed-media, painting)at School of Visual Arts (New York, U.S.A.)

​개인전 2024 생生, 땅으로부터 (뮤지엄 웨이브 Museum Wave 기획전), 2023 Wintering (BGN 갤러리 기획전), 2023 해빙(解氷) (아트레온 갤러리 선정작가전), 2022 Plantscape (BGN 갤러리 기획전), 2021 삶의 순환 Circle of life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기획전)

단체전 2024 시가 그림이 될 때 (오사카 한국 문화원, 일본), 2023 Korea Diaspora, Yesterday & Today (Kairos Christian University & Gallery Art Celsi, CA, U.S.A),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목포문화예술회관, 남도전통미술관, 진도운림산방 등등), 2023 Freedom: Variation &Expansion (Fukuoka Asian Art Museum)

공공소장 성남큐브미술관, 분당 서울대 병원, 서울대학교, 중국 Kerry Hotel, 선화예술고등학교

출판물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 신하순, 최혜인, 안지연, 최은혜 공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4.11
『생각하는 점, 말하는 선』, 신하순, 최혜인, 안지연, 최은혜 공저,꿈키아트스쿨 발행, 벽산장학문화재단 후원, 2013.12

 김은숙  Kim Eunsook

김은숙은 아티스트 프로모션 그룹 셀시우스와 (주)머니아츠의 대표이다.

갤러리아트셀시(한국, 미국), freedom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이나주 어바인에 위치한 KAIROS UNIVERSITY에서 국제 협력 국장을 맡고 있다.

화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화폭에 옮기거나 조각으로 빚어 표현한다. 김은숙은 작가의 감성과 예술성을 그대로 글로 옮겨 사회적·문화적 의미에 대한 논의와 분석을 전달하고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은숙은 국내 화가 스스로가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셀시우스와 머니아츠를 운영하며 그림과 글, 기획, 전시, 투자등 다양한 역할로 예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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