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식 펀드] 은행 펀드시대 '묻지마 투자' 조심
[적립식 펀드] 은행 펀드시대 '묻지마 투자' 조심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5.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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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고객 상담…직원교육 '절실'
"OO증권사의 A상품을 가입하고 싶은데 최근 수익률은 어때요?" "글쎄요. 인기있는 상품이 아니라서… 필요하시면 담당자를 연결해 드릴께요." 적립식 펀드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한 은행 창구를 방문한 직장인 김모(28)씨는 창구 직원의 얘길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다른 펀드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창구직원이 어딘가에 전화한 뒤 ‘추천상품 목록’을 뒤적였다. 의아했던 김씨는 “왜 이 상품을 추천하냐"고 물었고, 창구직원은 “수익률이 높고, 원금손실 위험이 적어 고객들이 많이 가입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씨가 과거 실적을 꼼꼼히 살펴보니 그 상품은 최근 3개월간 1.25%의 손실을 냈다. 김씨는 “상품 추천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어 신뢰감이 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은행창구에서 적립식 펀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은행권의 대표 상품이 정기 예금과 적금에서 펀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자산운용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으로 적립식 펀드 수탁액은 8조490억원으로 전달보다 4020억원 늘었다. 은행들은 지난 4월부터 증권사보다 적립식 펀드를 더 많이 팔기 시작했으며, 계속해서 격차를 벌이고 있다. 7월의 경우 국민은행이 791억원 어치를 팔아 1위였고, 우리, 조흥, 씨티, 신한은행 등이 차례로 상위권에 올랐다. 증권업계에서 가장 많이 판 미래에셋증권은 6위에 머물렀다. 누적 판매실적에서도 국민은행이 1조9980억원으로 23.6%를 차지했다. 2위인 대한투자증권(9473억원)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판매 주도권이 완전히 은행권으로 넘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은행들이 펀드 판매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1년여만에 증권사들은 텃밭을 내준 셈이다. ◆ 성공비결…거대한 판매망의 '힘' 이처럼 ‘증권사의 상품’인 펀드가 은행에서 많이 팔리는 이유는 소비자금융 분야에서 은행의 역량이 증권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은행권이 증권사에 비해 지점 등 판매망이 훨씬 큰데다 저금리에 실망해 예·적금에서 간접투자로 옮기는 고객을 창구에서 바로 접촉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펀드 판매실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은행의 경우 은행과 증권을 통틀어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많은 1123개의 점포(6월말 기준 개인영업점 971개, 기업금융지점 136개, PB센터 16개)를 갖고 있다. 그밖에 국민들 저변에 깔린 은행에 대한 높은 신뢰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은행마다 주식, 채권형 펀드 등 수익증권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말 현재 국민, 우리, 하나, 신한, 조흥은행 등 5개 주요 은행의 수익증권 잔액은 34조2393억원으로 이 은행들의 총 예금(306조원)의 11.2%에 달했다. 1년전인 지난해 7월말 이들 은행의 수익증권 잔액은 22조282억원으로 총 예금(307조원)의 7.2%에 불과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 이재순 조사분석팀장은 "고객들이 은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고객 접근성과 사용의 편리성, 철저한 1:1 개인고객 위주의 서비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 ‘묻지마'식 펀드판매 우려 정작 펀드 판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은행 직원들은 "인력이 모자란다"며 기초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펀드를 팔고 있다. 그만큼 ‘묻지마’식으로 펀드 판매가 성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창구 직원의 펀드에 대한 무지(無知)가 단순한 인력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차피 펀드 판매의 주도권은 전국적인 영업점 네트워크를 가진 은행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직원 교육을 하지 않아도 펀드는 잘 팔리기 때문에 굳이 판매자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시장 분석을 전담하는 리서치기관을 보유한 증권사와 달리 증시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수십 년 동안‘정해진 금리'의 예금 상품만을 팔아온 직원들이 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실적 배당 상품’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은행창구에 자회사 상품만을 독점 판매하거나, 창구 직원들이 일부 인기상품만을 집중 판매한다"며 "시장 점유율을 위한 양적 성장보단 질적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의 지위는 고객입장에서도 엄청난 존재"라며 "그 이유는 '대출'이라는 너무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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