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계, 돈 줄 막히자 '감량경영' 자구책 비상
증권계, 돈 줄 막히자 '감량경영' 자구책 비상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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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증권, 법인·리서치 임직원 재계약 불가 통보…중소형 증권사도 구조조정 대열
보험업계도 레고랜드 후폭풍 거세…흥국생명,신종자본증권 투자금 상환않기로 결정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현상이 확산되면서 중소형 증권사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위기 해소를 위해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이 급속히 증대될 조짐을 보이자 아예 이 조직을 없애는 증권사도 목격된다.

보험업계 역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유동성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 미행사를 결정했다.  흥국생명의 이런 결정은 외국인을 포함한 투자자들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려 보험업계 자본조달을 어렵게 하는 등 채권시장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로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유동성악화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케이프투자증권은 감량경영을 선언했다. 들인 비용에 비해 발생한  수익이 현저히 낮은 조직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면서 인력감축에 착수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최근 사실상 법인본부와 리서치본부를 접는다는 방침아래 해당부서 소속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약 30명의 임직원이 이들 부서에 소속됐으나 일부는 부서폐지고 재계약 대상에 제외돼 회사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 계약 기간이 남았거나 계속 근로자인 임직원의 경우 유사 업무로 전환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프투자증권 측은 이번 구조조정은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유동성 악화에 대비하기 위한 슬림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 투자은행 전문회사로 집중한다는 방침아래 오랫동안 고민해온 인력 효율화 방안을 강구하는 차원에 이뤄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유동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들도 케이프투자증권처럼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리서치와 법인영업 조직을 우선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나증권은 부동산 PF 관련 사업을 담당했던 구조화 금융본부 직원들을 IB부서 내 다른 본부로 보내면서 해당 본부를 아예 없앴다. 증권업계는 금융시장 침체에 대응한 수익성 악화를 막기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신설 1년도 안 된 주력 부서를 해체한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인 것같다는 견해를 보였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도 IB와 자기자본투자(PI) 부문을 비롯해 고정비는 높은데 수익이 저조한 부문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증시가 부진하고 자금시장도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효율향상을 위한 구조조정이 현 단계에서는 중소형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시장환경이 더욱 악화하면 사업부문 쪼개기, 붙이기 바람은 증권가 전반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자본시장 전문가는 연말에 가도 자금시장이 풀리지 않을 것 같으면 자체 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내는 증권사들이 속출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특히 연내에 그동안  PF대출이 많은 중소형 건설사, 증권사들 중심으로 디폴트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 내년 1·4분기 말께 도산이나 기업회생 절차를 밟는 곳들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흥국생명 사옥.(사진=뉴시스)

레고랜드 후폭풍은 보험시장에도 거세다. 채권시장 유동성 우려 악화로 은행과 보험사에서 콜옵션을 미행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싱가포르거래소를 통해 오는 9일 예정된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연 4.475% 금리로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조기상환은 발행일로부터 5년 후로 이달 9일 첫 기일이 도래한다. 발행 시 투자자들과 맺은 스텝업(금리인상) 조항에 따라 흥국생명 채권금리는 5년 미 국고채에 2.472%의 가산금리가 붙에 6.7%에 이를 전망이다.

신종자본 증권은 만기가 없는 영구채다. 하지만 5년 마다 콜옵션을 행사해서 원금을 상환할 수 있다. 5년후 콜옵션 행사는 채권시장에서 암묵적인 룰이 돼 있다. 조기상환 미행사는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아니다. 흥국생명은 이번에 유동성 부족으로 미행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환을 위해 지난달 말 5억달러 가운데 3억달러는 외화로, 1000억원은 원화 후순위채로 조달하려 했으나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조기상환을 실시하지 않는 것은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처음이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레고랜드 이슈와 기업들의 기초여건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 기조였다"며 "이번 일로 당분간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흥국생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보험사이기 때문에 공기업이나 은행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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