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사태, 강원도·정부의 무사안일이 빚은 정책실패
'레고랜드'사태, 강원도·정부의 무사안일이 빚은 정책실패
  • 한상설 기자
  • 승인 2022.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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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는 금융시장 시장 작동시스템을 잘 모르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채권에 대한 신뢰 붕괴를 고려치 않고 단순히 재정을 아낄 목적으로 출자회사 중도개발공사의 회생절차 신청도 불사하겠다는 것은 시장을 외면한 지극히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진태 강원도 지사는 중도개발공사의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그가 채권시장을 마비시킬 정도의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김 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사태에 안이한 인식과 대처로 문제를 키운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채권시장에 몰고 올 파장은 고려치 않고 오로지 수백억 원의 재정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채무보증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선언한 데서 촉발됐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달 28일 강원 춘천시 중도동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이 공사의 채권 채무는 동결되면서 회생절차를 밟게된다.

시장에서는 강원도가 출자회사인 중도개발공사를 위해 보증을 서준 채무 2050억원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법정관리 신청 검토는 채권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지자체가 빚보증을 선 신용도 높은 증권조차 채무 불이행에 빠지게 되면 채권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춘천 중도에 지어진 레고랜드 놀이시설.(사진=뉴시스)
춘천 중도에 지어진 레고랜드 놀이시설.(사진=뉴시스)

역시 김 지사의 발언으로 채권 시장은 격랑에 빠져들었다. 채권금리는 급등하고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도 믿을 수 없게돼 시장신뢰기반이 무너질 위험이 초래됐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자금경색 현상이 초래됐다.

이를 반영 채권시장의 금리는 큰 폭을 치솟았다. 기업들은 신용 경색으로 돌 줄이 막히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많은 기업들은 주요 자금조달 창구인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 자금경색 심화로 부도위기로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자들은 이를 ‘강원도의 일’로 치부하는 모습이었다.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는 문제를 한층 키웠다. 급격한 금리·환율 상승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불안 기류가 역력한 상황에서 정부의 무사안일고 보신주의는 채권시장을 위기로 몰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원도가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의 기업 회생 절차 신청을 발표할 때 알았냐”는 질문에 “우리(금융위)와 협의한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우리 대응이 부실하고 늦었다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고랜드 사태 대책을 묻자 “(이 문제는) 강원도에서 대응을 해야 할 거 같다”며 “(시장 전반으로 불안 심리가)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강원도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원도와 채권단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도 갈수록 거세지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강원도는 채무 2050억원의 만기를 내년 1월 말까지 연기했으나 채무 연계 증권(ABCP) 발행을 주관한 BNK투자증권은 정작 해당 증권을 발행한 페이퍼컴퍼니(아이원제일차)를 지난 4일 부도 처리했다. 한쪽은 당장 채무보증을 회피할 생각으로 만기를 연장한데 반해 증권사는 부도처리로 강원도에 채무보증을 이행토록 했다.

이런 갈등 속에 김 지사가 중도개발공사의 사가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한다는 발언에 채권시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김 지사가 뒤늦게 자신의 처방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것이지를 뒤늦게 인지하고 회생 신청 발표 23일 만인 지난 21일 “강원도 예산으로 내년 1월29일까지 빚을 갚겠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 23일 채권시장에 ‘50조원+알파’ 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채권시장의 동요를 지켜보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50조원 이상을 푸는 가래로 막는 꼴이 됐다. 지방 재정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비난을 피해 보겠다는 듯 지난 23일에야 보도자료를 펴내 “지자체가 채무를 보증한 사업의 추진 상황을 분기별로 점검하고 보증 채무 이행을 당부하겠다”고 밝혔다.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 문외한인 지방정부가 관련 부처에 자문과 정책협력을 구하지 않은 독단과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행정안정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무사안일이 빚은 전형적인 정책실패 사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 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강원도가 이번 결정(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을 하기 전에 정부와 협의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 안정 의지와 능력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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