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한 겨울밤의 꿈’처럼 끝나는 시리아 내전
[양문평 시사논평] ‘한 겨울밤의 꿈’처럼 끝나는 시리아 내전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9.0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란했던 시리아 내전도 끝나가는 양상이다. 그것은 지난 연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S에 승리했으니까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한다고 발표한 것과도 무관한 일이다. 그 발표가 있기 전부터 시리아 내전은 사실상 끝난 모습이었다.

우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점령지가 정상을 회복해 가는 것이 그렇다. 2015년 말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개입한 이래 시리아 정부군이 잇달아 승리하면서 정부가 시리아 영토의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한 때 시리아를 삼킬 듯 한 기세였던 반군이나 IS가 산발적인 저항은 하고 있으나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기미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국외로 피신했던 난민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러자 지금까지 알 아사드 정권에 냉담하거나 적대적이던 아랍 국가들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접근하고 있다.

수니파가 압도적으로 많은 아랍 국가들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시아파 계열인 알 아사드의 정권을 고립시키려 시리아 주재 대사관 등 공관을 폐쇄했었다. 그 뿐 아니라 아랍연맹(AL·Arab League)은 시라아를 축출하기도 했다. 그랬던 AL의 22개 회원국들 대부분이 시리아의 재가입을 찬성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각국별로 공관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지난달 16일에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시리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8년 만에 아랍권 지도자가 시리아를 방문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찜찜한 뒷맛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10년대의 세계를 요란스럽게 했던 시리아의 그 끔찍한 장면들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아니 ‘한 겨울밤의 꿈’처럼 사라져 가자 “그런 엄청난 사건들은 일어나야만 했던가?”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악인’ 후보로 올랐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다시 시선이 가면서 “그는 과연 그처럼 악인이었을까?”하는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악인을 타도하겠다며 결집했던 서방과 아랍지역 국가들이 뿔뿔이 제 갈 길을 가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그게 아니라면 아사드의 선악에는 관심도 없는 주변 국가들과 강대국들이 국가적 또는 종파적 이해관계에서 그런 법석을 떨었던 것은 아닐까?

아쉽게도 시리아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두 번째 의문이 더 크게 다가온다. 우선 아사드는 극악한 인물과는 딴판으로써 중동의 지도자로써는 평균 이상의 수준이다. 그는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해 철권통치를 해온 하페즈 알 아사드의 아들로 2000년 군주국에서처럼 정권을 ‘상속’받았으나 중동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일이다. 바샤르는 악당은커녕 온화한 성격이었다. 정치에 관심도 없는 데다 둘째 아들이어서 형이 교통사고로 죽지만 않았으면 안과의사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는 형의 죽음으로 권좌에 올라서도 영국서 공부한 견문을 살려 억압적인 시리아의 통치를 개혁하려 부심했다.

바샤르가 취임식에서 ‘민주화’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것이 좋은 예다. 그는 아버지가 만들었던 악명 높은 정보기관도 해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근본적으로 허약한 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리아는 아랍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시아파가 정권을 잡은 나라인데다 수니파 국가들이 적대시하는 이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창구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더욱이 시리아 국민 72%는 수니파인데 비해 아사드 집안이 속한 시아파는 13%밖에 안되는 구조다.

그런 바탕에서도 무난히 굴러가는 듯 하던 그의 통치에 불운이 닥쳤다. 9·11테러가 그것이다. 우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100만 이상의 난민이 시리아로 몰려와 경제가 어지러워진 것이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보다 큰 재앙은 원래 이란을 싫어했던 미국이 9·11테러를 계기로 이란이나 이란과 협력관계인 국가들에 심한 적대감을 보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부터 이상기후로 흉작이 계속됐다. 그런 마당에 2010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바람이 시리아를 비켜갈 리 없었다.

그 시위에 대한 단속은 중동에서 흔히 보는 난폭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 사태일 뿐인데도 시아파와 수니파, 구체적으로는 이란 세력과 사우디아라비아 세력이 개입함으로써 그 내전은 ‘중동 분쟁’으로 확산되었다. 여기에다 터키와 쿠르드 족이 가세함으로써 그 갈등은 한층 처절해졌다.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하자 완전히 국제적 대리전 양상을 띄었다. 그래서 바샤르는 세계의 언론에 악당처럼 묘사됐지만 마치 시리아의 민주화를 위해서 궐기한 듯 했던 주변 국가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웃기는 일이다.

중동국가들 가운데 가장 시리아 정권에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며 열렬히 반군을 지원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좋은 예다. 최근에는 반정부적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배후 인물로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샬만 왕세자가 거론되고 있다. 그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사우디 정부가 타국의 민주주의나 탄압을 거론하는 것이 희극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실이다.

사우디 이외에도 시리아를 축출했던 AL회원국들 가운데 시리아와 같은 문제가 없는 나라들을 찾기는 어렵다. 수단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 나라는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기 불과 3년 전인 2008년 다르푸르에서 반군이 일어났으니 남의 걱정을 할 처지도 아닌 셈이었다. 더욱이 대통령인 오마르 알 바시르는 그 반군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학살과 강간을 자행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최악의 전범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니파라는 위세로 원고석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사우디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최고 우방이라는 신분으로 변함없이 큰소리 칠 뿐이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던 시리아 내전도 도널드 트럼프가 철군을 발표하자 갑자기 필름이 끊긴 영화처럼 중단된 기분이다. 그래서 ‘20세기의 악인’으로써 바샤르 알 아사드를 그리던 그림도 화룡점정을 못한 채 미완성작품으로 버림받게 됐다. 만일 바샤르가 지난 8년 동안 수없이 겪었던 위기들 가운데 하나만 잘못 건들어도 정권이 무너지면서 그는 역사를 장식하는 악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현란한 문화예술적 묘사의 대상이 됐으리라.

우리는 역사가 몰락한 권력자를 얼마나 요란하게 장식하는가를 잘 알고 있다. 네로 황제가 좋은 예다. 네로라면 무슨 살인마처럼 묘사돼 있으나 그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허위다. 네로가 무대에 서서 연기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황제가 무대에 서기를 좋아했으니 철딱서니 없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런 체질의 사람들이 대체로 잔인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사형을 싫어한 나머지 곧잘 사형 집행서에 사인을 하지 않고 미루는 바람에 형사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가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비난도 후세 ‘역사가’들이 꾸며낸 ‘소설’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여주인공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찬란한 소설의 축복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빵을 달라고 베르사유 궁전에 몰려온 파리 여성들을 내려다보면서 “아니,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않아?”하고 핀잔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다만 이 에피소드는 너무 인기가 좋아서인지 여러 버전이 나온 바람에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 말았다. 어떤 버전에는 “뭐? 빵이 없어? 그럼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고 돼 있는 것이다.

막상 앙트와네트는 프랑스 왕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오락인 여우사냥도 싫어했다. 사방이 평야인 파리 부근에서 여우 사냥이란 밭 위로 말을 달려 농작물을 짓밟는 것이어서 였다. 그것을 보면 앙투아네트는 여성으로써는 역사에 남을 명군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딸로써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역사상 대표적 혁명을 일으킨 여주인공이 되자 온갖 ‘창작’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그의 부군인 루이 16세도 온갖 비난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792년 튀를리 궁전에 몰려오는 혁명 군중을 맞아 스위스인 용병들이 전투를 하려 하자 “이건 너희들과는 무관한 일인데 공연히 나서서 목숨을 잃지 말고 물러서라”고 말했던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의 충고에도 그 용병 786명은 하나도 빠짐없이 목숨을 잃었다. 루이16세의 그런 성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힌 셈이 됐다.

바샤르 알 아사드는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런 반열에 끼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역사의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가 헤쳐 나가야 할 앞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그는 중동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지에서 허약한 정권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