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평 시사논평] 예멘 휴전- 살기 좋아서 지옥이 된 땅의 이야기
[양문평 시사논평] 예멘 휴전- 살기 좋아서 지옥이 된 땅의 이야기
  • 양문평 고문
  • 승인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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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0시를 기해 예멘 정부군과 시아파 반군의 휴전이 이루어진 것은 1년 전만해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뉴스다. 전쟁영화 전문 멀티플렉스처럼 수많은 싸움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동에서 종전도 아닌 휴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곳의 휴전은 수명이 65년이 넘는 한반도의 휴전과는 전혀 다르다.

휴전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조금만 늦다보면 휴전이 깨졌다는 소식이 먼저 도달하는 게 일 수다. 따지고 보면 그곳의 휴전이야 말로 ‘휴전(休戰)’이라는 이름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싸우다 힘드니 낮잠이나 한숨 자고나서 다시 싸우자는 말처럼 들려서다.

더욱이 ‘예멘’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하지 않았던가. 외신에 관심 없는 이들은 말할 것 없고 외신을 읽는 독자라도 눈길이 잘 가지 않아서다. 중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야 큰 주머니 같은 아라비아 반도의 밑동이 터진 것처럼 반도 서남쪽 구석에 자리 잡은 그 나라의 ‘복잡하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런 예멘의 존재가 올해 들어 갑자기 한국에서 큰 화두가 됐다. 2015년부터 시작된 예멘 내전이 격화돼 올해 들어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몰려와서다. 예멘 난민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불과 49명이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했으나 올 들어 부쩍 늘어나 지난 6월20일 기준으로는 561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와 549명이 난민신청을 했다.

이에 한국 사회는 난민 수용을 둘러싸고 둘로 갈라져 격심한 논쟁을 벌였다. 그 후 우여 곡절 끝에 지난 14일 법무부 제주출입국이 최종적으로 2명만 난민으로 인정하고 412명에게는 인도적 체류허가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그들의 경우도 예멘 사태가 호전되면 그런 결정이 철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예멘의 휴전이 성공하면 한국에서 난민 문제는 일단 수면 아래로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좀체 관심도 없었던 예멘 난민으로 한국 국민들이 둘로 갈라져 심한 논쟁을 한 것이 그렇듯 지구촌은 갈수록 좁아져 전 세계에서 불어오는 갖가지 바람으로 난기류가 횡행한다. 그것은 오늘날 예멘이 그런 난장판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 자신도 왜 싸우게 됐는지를 정확히 모르듯 왜 휴전이 이루어졌는지도 잘 모르는 셈이다.

세계에서도 가장 잘 살 수 있는 예멘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된 것도 그처럼 어지러운 국제사회가 낳은 현상이다. 오늘날 예멘이라면 영양부족의 어린이 사진이 떠오르게 됐지만 그것은 예멘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예멘(아랍어로 Yaman)’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행운을 뜻하는 ‘윰느(Yumn)’라는 설이 있듯이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살기 좋을 수 있는 곳이었다. BC 10세기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왕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시바(‘사바’로도 알려짐)가 바로 예멘 지역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라 쳐도 홍해와 인도양이 만나는 요지인 예멘이 고대부터 해상무역의 요지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예멘 일대는 땅도 비옥해 농경도 발달했다. 그래서 예멘은 대부분의 땅이 사막이어서 유목민들이나 살던 아라비아 반도의 노른자위 같은 곳인 셈이었다.

그것은 오늘날 아라비아 반도의 한 구석에 숨어 있는 듯 한 예멘의 위상과는 딴판이었다. 오늘날 오일 달러로 세계적 부국이 돼 중동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막상 예멘이 화려한 도시국가였던 시절 유목민들이나 돌아다니던 가난한 사막의 나라였다. 그래서 로마와 페르시아가 각축을 벌이던 시대에는 예멘 일대가 제3의 지역이자 3위권의 지역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 역사는 아직도 예멘 수도 사나의 구시가에 남아 있다. 2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의 곳곳에서는 1000년 전의 번영하던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살기 좋은 곳이 너무 살기 어려운 곳이 되는 경우는 역사에서 너무 흔한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는 곳의 주민들이 좋은 예다. 그들은 값비싼 다이아몬드로 잘 살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보석은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에서처럼 그들과는 인연이 없거나 있어도 재앙이 되는 게 고작이다. 그것을 차지하려는 강자들의 싸움으로 현지주민들은 죽지 않은 채 살던 터전에서 도망쳐 나와 난민이 되는 것도 감사할 정도다.

예멘도 그랬다. 그곳이 요지가 되고 보니 로마와 페르시아가 쟁탈전을 벌이는가 하면 기독교가 보급된 이후로는 기독교와 유태교의 싸움터가 돼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 7세기에 들어와 이슬람교가 들어오자 아라비아 반도가 이슬람교의 기치에 통일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수니파가 티하마 평야에서 시아파계의 자이드 파가 고원지대에 각각 세력을 잡은 것은 당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먼 훗날 예멘의 불행을 낳는 씨앗 같은 것이었다. 하필이면 한 지역에 두 개의 종파가 공존한 것이다. 예멘의 그 처참한 내전이 수니파의 본산임을 자랑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대리전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종교적 갈등은 다른 문제에 밀려 오랜 동안 수면 아래 가려져 있었다.

문제는 16세기에 오스만투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가 그 제국이 망하려 하자 19세기에 새 제국주의 세력인 영국이 예멘 남부의 요충인 아덴 항구에 눈독을 들이면서 시작됐다. 오스만투르크가 1차 대전에 패한 1918년 영국은 예멘을 독립시켰으나 아덴을 포함한 남예멘은 ‘남 아라비아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지배했다. 북예멘은 왕정을 거쳐 아랍민족주의를 내건 공화정이 수립됐다.

남예멘도 이집트에서 영국을 몰아낸 가말 압델 나세르의 후원을 받은 남예멘해방전선(FLOSY)이나 인민해방전선(NLF) 등의 항전에 밀려 영국이 물러나 1967년11월에는 남예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이 생겨났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물러나도 그들이 할퀴고 간 땅은 옛 땅이 아니어서 이질적인 두 사회가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경위는 달라도 일제가 물러난 한반도의 모습과도 닮았다.

더욱이 외세가 떠난 것도 아니다. 영국은 떠났으나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보이지 않는 입김은 이 나라의 어지러운 속에서 한층 짙게 스며들었다. 여기에다 중세적인 부족국가 같은 이 지역 사회의 현상이 겹쳐 예멘의 분쟁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냉전은 끝나도 이 지역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 분쟁 당사자들은 줄곧 떠들지만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종교적 갈등에다 저마다의 오랜 전통을 이해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 더욱이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이 퇴장한 무대에는 최근 들어 부쩍 갈등이 심해진 수니·시아파 갈등을 틈타 사우디와 이란이 등장한 셈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들도 미·소처럼 무대에는 서지 않은 채 인형극 조종실을 점거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완전히 퇴장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우디의 실권자로써 예멘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너무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미국은 사우디 정부에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을 통해 후티 반군에게 그 무기를 쏟아왔다. 여기에다 물러난 듯 했던 소련을 대신해 러시아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처럼 복잡한 사연들이 예멘 내전을 악화시키듯 그 복잡한 사태가 그것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바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의 배후라는 설이 유력해져 이번 휴전이 성사됐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아직도 무함마드를 감싸고 있으나 최근 중간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점령한 민주당이 사우디를 견제하는 것까지 막아줄 수는 없는 일이어서다.

두 달 전만해도 예멘 국민들 가운데 ‘자말 카슈끄지’라는 이름을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됐을까. 하지만 그의 비극이 예멘 휴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됐다고 보면 카슈끄지는 다소 황당하기는 해도 나름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한 셈이다.

새삼 지구촌이 너무 좁고 복잡하다는 느낌이다. 그 지구촌의 한구석에서 너무 멀고 희미해 보이는 바람이 갑자기 태풍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카슈끄지의 피살이라는 엉뚱한 사건이 휴전을 이루었듯이 하찮은 계기로 그 휴전은 끝나서 낮잠을 자던 전사들이 눈을 부비며 다시 총을 잡을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다.

‘난민’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휴전’도 그렇다. 하루가 바쁘게 숨막히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논쟁은 까마득한 기억으로 사라져 가지만 그 논쟁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지구상의 누구도 그렇다. 그래서 트럼프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난민에 대한 찬반의 한쪽 편이 돼 싸우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한국인이 귀가 아프게 들어온 ‘국민의 의무’라는 말과는 달라서 생소하게 들리는 ‘인류의 의무’라는 주제의 논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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