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맥주값 거품’ 나몰라라... 맥주제조사 편들기 논란
국세청, ‘맥주값 거품’ 나몰라라... 맥주제조사 편들기 논란
  • 한원석 기자
  • 승인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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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림, 국민부담 늘려 국내 맥주회사 보호하는 ‘맥주세 개편 건의’에 문제제기

편의점 맥주 열풍을 볼러온 ‘4캔에 만원’하는 수입 맥주의 열풍적인 인기와 성장세가 맥주 세금 개편 논란으로 옮겨 붙고 있다.

그동안 국내 맥주회사들은 소비자의 입맛은 외면한 채 ‘꼼수’를 통한 가격 인상 등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국내 맥주 시장을 수입 맥주에 내어주자 투자를 통한 신제품 출시 대신, 세금제도를 탓하며 국세청을 통해 정부에 ‘대기업 민원해소식’ 세법개정을 건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다.

맥주 제조社, 세율 내려 매출 늘면 바로 가격 올려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경북 안동)은 세종시 국세청 국정감사 현장에서 수입 맥주와 세금을 둘러싼 논란을 지적했다.

국세청이 김광림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2007년 맥주에 붙는 세금이 제조원가의 110%에서 총 3차례에 걸쳐 현재의 72%로 38%p 인하되자, 맥주 회사들도 정부가 낮춰준 세율의 1/4만큼(9.3%p)은 출고가격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맥주 값이 싸진 덕분에 2008년 매출(생산량)은 10% 가까이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역대 최고 매출에 그치지 않고 제조사들은 맥주 시장이 오비맥주・하이트진로 단 2개사(현재는 롯데주류 포함 3개사)인 과점 시장인 점을 이용해 2008년 2차례(2%p, 6%p), 2009년 1차례(2.9%p) 등 총 3차례에 걸쳐 10.8%p의 가격을 올려 이익을 극대화 시켰다.

최근 16년간 국내 맥주사들의 맥주 세율 인하에 따른 가격 인상. (자료=김광림 의원실 제공)
최근 16년간 국내 맥주사들의 맥주 세율 인하에 따른 가격 인상. (자료=김광림 의원실 제공)

그러다 2009~2011년 막걸리 열풍으로 맥주 인기가 주춤해지고 가격 인상에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자, 2012~2015년 매출은 정체되었고 맥주 회사들은 더 이상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

신제품 대신 수입맥주 '올인'에 위기 자초한 맥주3사
단순한 제품군으로 위기감을 느낀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3대 대기업 맥주회사들은 투자를 통한 신제품 출시 대신 2011년부터 수입맥주를 본격적으로 수입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2011년 한・EU, 2012년 한・미 FTA 발효로 수입 맥주에 대한 관세가 낮아지고 19대 국회가 소규모 맥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낮추면서 다양한 맛과 향의 수제 맥주와 수입 맥주 수요가 늘어난 것을 겨냥한 것이다.

현재 편의점 판매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KIRIN·1664BLANC(하이트진로), 버드와이저·밀러·호가든·산토리(오비맥주), 블루문(롯데주류) 등은 국내 맥주회사가 수입권을 가지고 있다.

대기업 맥주회사들이 제품 라인업 다양화 차원에서 도입한 수입 맥주가 해를 거듭하며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끌자, 지난 2013~2014년 최대 206만 킬로리터(kl)에 달했던 국내 맥주 생산량은 지난해 182만 킬로리터로 1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맥주회사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온 수입 맥주가 2015년부터는 두 자리 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안방을 호령하게 된 것이다. 김광림 의원은 “국내 맥주시장의 불황을 초래한 이들이 다름 아닌 국내 맥주제조사 본인들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2016년, 맥주 제조사들은 또다시 3개사 과점 시장 구조를 악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시장원칙과 반대로 떨어진 매출과 줄어든 이익을 만회하기 위해 오히려 가격을 6%p 올려버린 것이다. 맥주 출고가격은 2005년 대비 15%, 소매판매 가격은 같은 기간 25% 수준 인상됐다.

수입 맥주와 비교해 맛과 가격 모두 뒤처진 가운데 가격만 올린 탓인지 국산 맥주의 쇠퇴는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2017년 생산량은 2005년 이래 최저, 15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 쳤다. 그 자리는 수입 맥주가 차지했다.

연도별 국산맥주 생산량, 수입맥주 판매량. (자료=김광림 의원실 제공)
연도별 국산맥주 생산량, 수입맥주 판매량. (자료=김광림 의원실 제공)

김 의원은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을 내리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한 것은 소비자를 볼모로 한 과점시장의 전형적인 폐해”라고 지적했다.

외국계・대기업 맥주회사 보호하는 국세청
월드컵과 올림픽 등 대형스포츠 이벤트와 무더웠던 여름 특수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국내 맥주 제조사들은 맥주의 품질개선과 신제품 출시 대신 세금제도를 탓하며 ‘수입 맥주에 붙이는 세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비싼 가격으로 수입맥주를 사게 하는 방법을 국세청에 건의한 것이다.

국내 1위로 시장의 5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오비맥주의 경우 지분 100%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데도, 국세청은 국내 맥주산업 붕괴를 이유로 내세워 맥주회사의 손을 들어준다. 다른 주종과의 형평성에 대한 고민 없이 맥주회사가 요청한대로 종가세를 포기하고 종량세 개편방안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세금부과 방식이 종량세로 바뀔 경우 수입 맥주의 가격은 올라가고, 국산 맥주는 내려가 시장점유율 회복이 가능하다고 대기업 맥주회사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이 계산한 자료에 따르면, 맥주회사의 건의가 확정될 경우, 500ml 맥주 1캔당 수입산은 89원이 비싸지고, 국산은 363원이 내려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금인상 여파로 수입 맥주의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수요가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줄어든 세금 부담으로, 10% 이상 판매가를 낮출 여력이 있는 국내 맥주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맥주회사는 내심 종량세 개편의 또 다른 효과인 고가의 ‘고급맥주’에 대한 감세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종가세 체계에선 다양한 첨가물을 함유한 고가 맥주를 출시할 경우 오른 출고가격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 하지만 종량세로 바뀔 경우, 고가의 고급 맥주에 대한 세금도 시중의 일반 맥주와 동일하게 매겨져 사실상 고급 신제품에 대해 감세효과를 얻는 것이다. 수입산에는 세금을 더 매겨 국민 부담을 늘리고, 본인들이 생산하는 국산 맥주에는 세금을 내려달라는 아전인수식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막걸리, 전통주는 어쩌고 왜 맥주만?
막걸리와 맥주가 경쟁관계에 있는 대체재라는 점도 맥주만 콕 짚어 세금제도 개편 건의가 성급한 결정임을 반증한다. 실제로 국내에 막걸리 열풍이 불었던 2009년~2011년 국내 맥주 생산량은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국내 맥주에 대한 사실상의 감세 건의가 확정돼 맥주 가격만 내려갈 경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국내 막걸리 제조회사들의 판매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국세청 자료를 공개한 김광림 의원은 “현재 맥주 세제 논란은 제품개발 투자대신 수입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던 국내 맥주회사들이 스스로 들여온 수입 맥주로 줄어든 시장을 회복하기 위한 민원성 건의를 국세청이 종합적인 검토 없이 수용한데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국세청을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어 “정작 종량세 전환이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주종은 전통주와 소규모 수제맥주다. 1~2개 주종의 과세체계만 바꾼다면 당연히 전통주가 포함돼야 할 것이고, 시범 실시의 경우에도 전통주와 수제맥주부터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식품명인이 국내산 고급 원료와 전통의 방식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소규모 수제 맥주 사업자가 다양한 방식의 맥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출고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 세율이 얹히니 소매판매가격은 출고가격의 2배 수준에 달하는 전통주와 수제맥주의 문제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견해다.

국세청은 금년 6월에 대기업 맥주회사의 요청대로 종량세 개편방안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전통주와 막걸리, 소주에 대한 현재의 종가세를 유지하면서 맥주에 대해서만 종량세 개편이 필요하다는 국세청의 의견을 곧바로 세법개정안에는 반영하지는 않았다. 대신 전체 주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 연구용역을 시행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ECD 35개국 가운데서도 맥주에 대해서만 세금을 달리 매기는 나라는 단 2개국(이스라엘, 터키)밖에 없는 점도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기획재정부는 국세청이 맥주회사의 의견만 듣고 결정을 내린 것과 달리 연구용역 결과에 대해서 주종별 사업자 및 단체들과의 간담회, 일반 국민 공청회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림 의원은 “국세청은 주세법 40조(주세 보전명령)에 근거해 2012년 가격 인상 때 까지 사실상 맥주 등 주류에 대한 출고가격 승인권을 행사해온 만큼 가격 인상의 근거가 된 자료를 제출받아 맥주가격에 불필요한 거품이 끼어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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