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石油지배 강화”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 “石油지배 강화”
  • 박정민 기자
  • 승인 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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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유시장을 좌우하는 두 거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50년간의 구원(舊怨)을 풀고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9·11테러 이후 사우디와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으며 앞으로 중동 정세는 물론 세계 석유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압둘라 왕세제(世弟)는 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우디 국가원수급 인사의 러시아 방문은 사상 처음이다. 압둘라 왕세제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양국 관계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자평했다. ▽ 석유시장 지배력 커진다 = 양국 정상회담의 표면적인 의제는 에너지분야 협력. 양국이 서명한 ‘석유·가스분야 협력협정’은 합작기업을 세워 에너지 공동개발에 나서고 가스와 석유의 생산 정제 보관 운송 등에서 총체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사우디가 2000억달러 규모의 대러시아 에너지부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그동안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과 수출량을 무기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끌면서 국제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최근 비OPEC회원국인 러시아의 석유생산과 수출이 크게 늘자 협력이 절실해졌다. 반면 수출의 40%와 재정수입의 25%를 원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러시아로서도 사우디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원유 및 가스 생산과 수출에서 1, 2위를 다투는 두 나라의 공조는 세계 석유시장의 지배권 강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 과거의 적이 동지로 = 사우디는 중동 내 미국의 맹방으로 옛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사우디 왕가는 “미국은 세계열강 중 유일하게 식민지를 경영한 과거가 없다”며 친미노선을 고수했으며 냉전시대에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소련 봉쇄정책에도 적극 가담했다. 소련 경제가 붕괴한 데는 사우디가 적극적인 석유증산정책을 펴 국제원유가를 폭락시킨 것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이런 친미정책의 대가로 사우디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 분야에서 중동의 맹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9·11테러 후 미국에서 사우디 왕족의 알 카에다 지원설이 흘러나오면서 양국은 틈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 명분의 하나로 ‘중동의 민주화’를 내걸자 왕정을 표방하는 사우디에서는 내정간섭과 체제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사우디와 러시아에 해빙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사우디 경제인들이 대거 러시아를 방문했고 압둘라 왕세제의 측근인 투르키 알 파이살 왕자도 지난해 10월 러시아를 찾았다. 사우디는 미국에만 치우친 외교를 다변화해 체제안정을 도모하고, 러시아는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미국을 견제하는 공조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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