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학생의거 "72년전 맨주먹으로 자유를 위해 싸웠다"
신의주학생의거 "72년전 맨주먹으로 자유를 위해 싸웠다"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7.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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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서울 자유총연맹에서 신의주학생반공의거 72주년 기념행사 개최
백영철 회장 "신의주학생의거 정신으로 평화통일 이룩하자"강조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회장 백영철 )는 23일 서울 중구 장충동에 소재한 자유총연맹 2층 회의실에서 '신의주학생반공의거 제 72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신의주학생반공의거 기념식'은 72년전인 1945년 11월 23일 소련의 제국주의와 김일성 정권에 항거해 맨 주먹으로 자유민주주의수회를 외친 신의주학생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백영철 회장은 "신의주학생의거의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하자"고 강조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선배들이 흘린 피가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단결하여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래서 먼저 돌아가신 신의주의거 참가자들의 꿈이었던 자유민주주의를 저 북한땅에 반드시 안고 고향에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신의주학생반공의거는 1945년 11월 23일 평북 신의주에서 남녀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를 말한다. 

그해 11월 21일 신의주용암포의 구세학교에서 열린 시민대회에서 수산학교 4학년생 최병학 군이 기념사를 통해 폐교조치된 용암포수산기술학교의 복구를 요구하고 공산당 용암포 인민위원장 이종흡의 만행 등 공산당의 불법을 규탄하자 이를 지지한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학원의 자유`를 부르짖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소련군과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이들을 기습, 제1교회의 홍석황 장로를 현장에서 죽이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중상을 입히자, 격분한 신의주시의 6개 남녀 중학생 3,500여 명이 11우러 23일 오후 2시부터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학생들은`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학원의 자유를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지를 행진했다. 시위대를 향한 소련군과 공산당의 무차별 사격으로23명의 학생이 피살됐고, 7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2천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투옥됐다.

사건 후에도 검거선풍이 불어 2,000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체포 구금됐으며 일부는시베리아로 끌려가기도 했다. 함석헌 선생도 이때 수감되는 고초를 겪고 단신 월남했다.

신의주학생의거는 북한주민의 반공의식을 대변한 것이었으며, 한국 학생들의 민족적 의기(義氣)와 애국심의 발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공의식이 고조되어 북한 각지에서는 이와 유사한 반공의거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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