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공직자의 85%가 대기업과 대형 로펌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부산 연제·정무위)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통과한 4급 이상 퇴직자 20명 중 13명(65%)이 삼성카드, 기아자동차, 현대건설, GS리테일 등 대기업에 재취업했다. 김앤장, 태평양, 바른, 광장 등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도 4명(20%)이었다. 언론사 경제연구소와 회계법인에 취업한 퇴직자가 각각 1명이었다.
공직자윤리위 ‘유명무실’
특히 이중 단 1건을 제외한 19건(95%)의 경우 퇴직 후 6달 안에 바로 재취업했고 1달 여만에 취업한 사례도 35%(7건)에 달했다. 더욱이 대기업에 재취업한 13건 중 9건(70%)은 ‘고문’이라는 고위 직책으로 영입돼 사실상 업계의 ‘공피아 전관예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김해영 의원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공정위 공직자들이 관련 업계로 재취업하는 행태는 노골적으로 대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제한심사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국무위원·국회의원·4급 이상의 일반직 공무원 등을 취업제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업무연관성이 높은 직군으로의 고위공직자 재취업을 대부분 승인해 취업제한심사의 유명무실함을 드러냈다는 것.
게다가 대기업이나 로펌으로 간 공정위 퇴직자 17명 중 16명의 재취업 시점은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을 외친 세월호 참사 이후다. 같은 기간 금융위원회 출신 4급 이상 퇴직자 17명도 금융업계 및 대형 로펌에 갔다.
이처럼 공정위 고위공직자 출신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는 여전히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공정위 4급 출신 퇴직자 2명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6월 취업심사에서 각각 롯데쇼핑의 롯데마트사업본부 상근고문, 삼성물산 상근고문에 취업가능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30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6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심사를 요청한 45건 중 39건은 취업가능, 4건은 취업불승인, 1건은 취업제한, 1건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각각 결정됐다. 취업가능은 퇴직 전 5년간 속했던 기관 업무와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에, 취업제한은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확인됐을 경우에 각각 내려지는 조치다. 취업불승인의 경우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고 취업을 승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 내려지는 결정이다.
금융감독원 1급 출신 퇴직자는 KB생명보험에 전무이사로 취업하려다가 불승인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2급 출신 퇴직자는 신한저축은행 상근감사위원에 취업가능 판정을 받았다.
기업들, 공정위 ‘전관’ 방패 장착
김 의원이 발표한 공정위 퇴직공무원(취업심사대상) 재취업 현황 기준(2012.1.1.~2016.5.31.)에 따르면 김 모(전 일반직고위공무원)씨는 2012년 2월3일 퇴직해 2012년 3월9일 직접판매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재취업했다.
김 모(전 4급)씨는 2012년 3월5일 퇴직한 뒤 2012년 4월1일 엘지경영개발원 자문으로, 조 모(전 4급)씨는 2012년 4월4일 퇴직해 2012년 5월1일 KT 상무보 자리로 각각 이동했다.
김 모(전 4급)씨는 2012년 11월2일 퇴직한 후 2013년 12월4일 SK텔레시스 상무이사로, 홍 모(전 4급)씨는 2013년 1월21일 공정위에서 나와 2013년 4월1일 롯데제과·GS리테일 자문으로 재취업했다.
2013년 2월4일 퇴직한 김 모(전 4급)씨는 2013년 5월1일 김앤장 법률사무소 위원에, 2013년 5월15일 퇴직한 강 모(전 3급)씨는 2013년 8월15일 안진회계법인 전무 이사 자리로 옮겼다. 김 모(전 3급)씨는 2014년 2월4일로 공정위 업무를 마치고 2014년 7월 28일 법무법인 태평양 공정거래 1팀장이 됐다.
2014년 3월19일 퇴직한 김 모(전 4급)씨는 그해 7월29일 하이트진로 고문에, 2014년 12월15일 퇴직한 김 모(계약직고위공무원)씨는 불과 18일 후인 1월2일에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재취업했다.
유 모(전 4급)씨는 2015년 1월16일 공정위에서 나와 2015년 6월1일 SK하이닉스 고문으로, 이 모(전 일반직고위공무원) 씨는 2015년 1월19일 퇴직해 2015년 5월31일 파이낸셜뉴스신문(주)소비자경제연구소장 자리로 옮겼다. 전 모(전 4급)씨는 2015년 3월23일 퇴직한 뒤 2015년 7월1일 법무법인 광장의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5월 29일 퇴직한 한 모(전 4급)씨는 같은해 8월1일 삼성카드 고문에, 2015년 12월18일 공정위 일을 끝낸 김 모(전 4급)씨는 2016년 3월1일 LG경영개발원 고문 자리로 이동했다. 2015년 12월31일 퇴직한 한 모(전 4급)씨는 2016년 2월1일 만도 고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권 모(전 3급)씨는 2016년 1월18일 퇴직해 2016년 3월1일 기아자동차 고문으로, 김 모(전 3급)씨는 2015년 2월16일 퇴직한 후 불과 한 달을 갓 넘긴 3월 21일에 현대건설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2016년 1월 18일 공정위 직위를 내려놓은 강 모(전 4급)씨는 2016년 4월1일 현대백화점 고문이 됐고 2015년 6월30일 퇴직해 강 모(전 4급)씨는 2016년 5월1일 GS리테일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공정위 패소율 높인 ‘공피아’
관가와 재계, 법조계 등에선 공정위의 과징금 패소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이와 같은 전관예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법원에서 패소해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 액수는 2012년 111억원이었지만 2014년 1479억원, 2015년에는 3126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로펌에 간 공정위 ‘전관’들에게 역할을 주기 위해 지나치게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것이다. 또 이런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공정위 출신들을 고용해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결국 공정위 조사가 들어오기 전후 공정위 ‘전관’들이 정보 수집, 모의조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짜서 대응방안까지 마련해준다는 것은 업계의 정설이다.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인천 남갑·정무위)은 “공정위 퇴직자가 대기업이나 대형로펌에 재취업하는 것이 공피아 전관예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공직자윤리법 상 업무 관련성에 대해 더 폭넓게 심사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과징금 산정 부과 제도를 개선하고 조사심사 처리 과정의 부실을 방지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실제 홍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과징금 불복 소송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기된 과징금 소송 5건중 1건은 패소 또는 일부승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총 589건의 불복 소송 가운데 현재 진행중인 241건을 제외한 348건의 사건 가운데 23.3%에 해당하는 81건은 패소(42건) 또는 일부승소(39건)였다.
과징금 불복 소송 가운데는 지난 2012년 공정위가 부과한 가습기살균제 가해업체인 옥시와 홈플러스의 과징금 사건도 포함됐다.
이들 업체들은 과징금이 부과되자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해당 소송은 그해 9월 공정위 승소로 결정됐다.
홍 의원은 “표시광고법 위반행위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가해업체들이 이마저도 불복하겠다고 소송을 제기했었다”며 해당 기업의 윤리적·법적 책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질타했다.
또한 홍 의원은 공정위가 과징금 소송 패소 등에 따른 과징금 환급으로 최근 5년간 총 7천861억원을 지급했으며 이 가운데 11.7%인 920억은 과징금에 이자 개념으로 지급한 환급 가산금으로 지급됐다고 밝혔다. 환급금에는 공정위 과징금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환급금 가산금리가 붙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결정된 농심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이다. 당시 농심에 부과된 1080억원의 과징금 규모는 식품업계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가산금 109억원을 더 얹어서 돌려줘야 한다.
이와 관련 홍 의원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 소송 패소로 국고 손실이 발생한다. 국고금관리법상 당해 환급금은 당해 징수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공정위는 충당금을 따로 쌓지 않아 과징금 수납계좌 세입이 생겨야만 지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