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중소 기술 탈취한 대기업 철퇴 예고
정재찬, 중소 기술 탈취한 대기업 철퇴 예고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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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선다. 힘없는 중소 하청업체 기술을 사실상 빼앗아 이용하는 원청업체의 갑질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에서 잡은 단서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기술유용·탈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4월부터 직권조사를 할 것이라고 지난 13일 밝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보호 방안은 올해 공정위의 중점 과제다.

하청업체 울리는 기술 빼가기

직권조사란 피해 당사자의 신고가 없어도 공정위가 자체적으로 불공정행위 의심 사업장을 조사하는 것이다. 정 위원장이 대기업 기술 탈취에 칼을 빼든 이유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빼가기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우선 대기업들이 특허 등 중소기업의 기술 자료를 요구할 때 서면교부 의무를 준수했는지를 점검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 원청기업은 하청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반드시 주고받은 기술자료가 무엇인지를 서면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 분쟁의 소지를 막을 수 있고 중소기업이 스스로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상 규정은 지난 2010년 만들어졌으나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의 보호망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향후 공정위는 서면 교부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기술 유용 혐의가 드러난 업체들에 대해서는 올해 하반기 중 본격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0만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도급법 부당 감액·반품 등 불공정 행위 실태를 온라인 설문조사했는데 이 때도 일부 업체들의 기술유용 혐의가 드러났다. 하도급 관계에서 일어나는 기술유용은 끊임없이 문제가 돼 왔지만 정작 제재를 받은 사례는 드물다.

사실 입증 어렵다제재 드물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자료 요구·유용을 금지한 하도급법상 규정은 지난 2010년 만들어졌지만 이후 6년간 제재 사례는 LG화학이 유일하다. LG화학은 지난 20133월부터 10월까지 납품업체에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배터리라벨 제조 관련 기술자료를 넘겨줄 것을 23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처음에는 LG화학의 중국 내 공장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라벨 제조원가, 원재료 등을 요구해오다 협상결렬 이후에는 라벨 제조방법 등 구체적 기술을 요구해 받아냈다.

배터리라벨은 배터리의 제품명과 규격, 용량, 제조연월일 등의 정보를 표시한 스티커다. 협력업체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 인쇄방식은 생산성이 높고 불량률은 낮은 특허기술이다. 이후 하청업체와 거래를 끊고 넘겨받은 기술로 중국법인에서 직접 배터리라벨을 만들어냈다가 지난해 공정위에서 과징금 1600만원을 부과받았다. 해당 하청업체는 라벨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LG화학 이전에는 LG하우시스가 정당한 이유 없이 기술 자료를 요구해 받아냈다가 적발됐지만 해당 기술을 유용했다는 증거가 없어 시정명령만 받았다. 지난 201112월부터 20136월까지 S사에 창호 제조를 위한 금형 제작을 위탁하면서 정당한 근거 없이 상세한 설계도면 제공을 요구, 수령한 혐의다. LG하우시스는 S사와 2003년부터 장기 거래하면서 그 전 약 8년 간은 직접 설계한 도면을 제공한 뒤 S사에 제작만을 위탁해 납품 받아왔다. 그러나 2011년부터는 15개 금형 제작 위탁 건과 관련해 상세한 설계도면을 요구했다. 더구나 S사에 도면을 제공할 때 1장만 준 것과 비교해 S사로부터는 부분별 상세 도면 20여장을 받았다.

공정위는 LG하우시스의 이같은 행위가 하도급법 제12조의3 1에 저촉된다고 봤다. S사가 내논 설계도면은 주요 부분의 제조방법은 물론 제작시 유의사항 등까지 담긴 기술 노하우 자료기 때문이다. 그 외 12건은 기술자료 제공 여부에 관한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하고 당사자 합의로 신고 취하 등을 이유로 사건종료 처리되거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적발 땐 5억원 내 과징금

기술유용이 일어났어도 과징금 수위가 낮아 솜방망이 처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 위원장은 올해 들어 제재 수위를 높였다. 기술 탈취에 따른 피해 규모를 판단하기 어려운 분야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 지난 1월 하도급법 시행령이 개정돼 하반기부터는 법 위반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기술유용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5억원 이내에서 정액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유용 제재 강화는 작년 7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때도 M&A 활성화를 위한 안건으로 올라온 사안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기술 확보를 원하는 대기업이 중소·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데 우리는 인력을 빼가거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술을 탈취하는 사례가 많아 M&A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 위원장은 올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와 유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예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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