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칼' 권력 앞에 무디어졌다
'녹슨 칼' 권력 앞에 무디어졌다
  • 박기영 기자
  • 승인 2015.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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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리스트' 13인의 檢事 무능 '논란'

<13인의 무사>라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있다. 막부시대에 쇼군의 동생이자 차기 재상이 될 나리츠구가 폭정을 일삼자 재상 도이는 자객에게 그를 제거해 달라고 의뢰한다. 자객은 성공해도 어둠이고, 실패하면 죽는다. 이들 13인의 자객은 200명의 적을 상대로 한 마을에서 전투를 벌인다. 결국 2명만 살아남는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으면서 남긴 메모쪽지에 담긴‘성완종리스트’수사와 관련 13명의 검사가 동원해 82일간의 수사를 벌였지만 수사결과는 구속 0명으로 끝났다.

무사와 검사는 달랐다. 무사는 국가를 위해 죽음을 각오로 싸웠고, 검사는 뭘 위해 싸웠는지 알 수 없다. 결국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결론이다.

‘성완종은 죽어서도 억울하다’

2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기 직전 남긴 메모‘성완종 리스트’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4월 12일 수사팀 구성 후 82일 만이다.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리스트에 등장하는 정·관계 인사 8명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마무리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공소권 없음’, 나머지 5명(허태열·홍문종·유정복·서병수·이병기)은‘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예견된 부실수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사건에 검사(13명)와 검찰수사관 등 30여명을 투입했다. 사건 관계인 140명을 조사했다. 33번이나 압수수색했다.

돈을 준 장본인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죽었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하는데 어려웠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검찰 수사의지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수사팀은 이 전 총리, 홍 지사 외에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만 소환조사했다. 김기춘·허태열·이병기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서면조사로 대체해‘면죄부’논란이 불거졌다. 그 내용도 성 전 회장과의 관계,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을 묻는 데 그쳤다.
서면조사는 해명을 듣는 데 주로 사용되는 조사방법이다. 수사팀은 이들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계좌추적 등 강제수사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리스트 속 인사들에게 돈을 주는 것도 받은 것도 봤다는 증인도 없고 증거가 없는 상황에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을 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 전 총리와 홍지사의 기소된 케이스는 관련 증인이 있었다는 의미로 보여 진다.

사건본류 접근 못한 반쪽수사

당초 검찰수사의 본류는 2012 년대선자금.‘ 성완종리스트’메모에 적힌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원), 유정복 인천시장(3억원), 서병수 부산시장(2억원) 등이다. 이들은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본부장급의 핵심 역할을 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조직)본부장을 맡았잖아요. 조직을 관리하니까 내가 한 2억 정도 이렇게 현금으로 줬다.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홍의원은 2012년‘박근혜 대선자금’수사로 가는‘입구’로 여겨졌다.

지난 6월 2일자 한국일보는“성완종 전 회장이 정치인에게 전달된 금품의 출처로 의심되는 또 다른 비자금 흐름을 확인했다”면서“수사팀은 지난 5월 29일 압수수색을 전후해 새로운 비자금 흐름을 쫓는 과정에서 이들 3명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유의미한 단서들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홍 의원 등의 계좌 추적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두고 처음부터 수사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 지난 6월 4일 김모(새누리당 전 수석부대변인)씨를 성전 회장 측으로부터 2억원을 건네받은 혐의(정치자금법위반)로 체포해 5일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김씨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에 몸담았다. 김 씨의 체포와 구속영장 신청은 사건의 분수령이었다. 김 씨를 대선자금 수사의‘키맨’으로 보고 그를 구속한 뒤 추가 수사를 하려 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검찰, 대선수사 털어주기로 마무리

검찰은 성완종 대선자금 지원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실체가 없는 이야기”라며‘털어주기’로 마무리했다.

수사팀 관계자는“대선이 있었던 2012년 금융위기가 닥치고 건설경기가 급전직하하면서 경남 기업에서 현금화된 총 부외자은 1억8000여만원에 불과했다. 그중 가용 자금은 1억원을 조금 넘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이 말한 액수와 차이가 났고‘대선자금’으로 내놓을 만한 비자금의 실체가 없다는 것.

검찰의 수사 미흡에 윗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권력 상층부가 수사상황을 일일이 지시하고 체크했다는 의혹이다. 한 검사는“리스트 인사들에 대한 조사 방법까지 청와대가 일일이 챙겼다”고했다. 이는 관련자들을 소환하지 않고 서면조사를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여진다. 수사 결과는 결과적으로 청와대나 여당의‘기대 수준’에 맞춘 셈이 됐다.

때문에 성완종사건에 대한‘박근혜 정부 번역기’라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정치인은 물타고, 성완종 측만 강하게 압박

검찰은 권력에 약했다. 친박 실세들은 수사를 피했다. 오너를 잃고 워크아웃에 들어간 경남기업 쪽 인물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수사 초기에 성 전 회장의 최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이용기 비서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다. 또 경남기업 본사와 서산장학재단 등 성 전 회장 주변에 대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했다. 수사를 받아야 할 리스트 속 8인 가운데 5 명은 서면조사를 받은 반면 성전 회장 주변인들만 강한 조사를 받았다. 2명은 구속됐다.

수사팀은 또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73)씨가 2007년 말 성 전 회장 쪽에서 특별사면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5억원을 챙긴 사실을 확인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판단에 따라 불기소(공소권 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성 전 회장한테서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됐으나 출석 요구에 불응한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재배당해 계속 수사하기로 했다. 성 전 회장한테서‘대선자금’으로 보이는 돈 2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근식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에 대한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정부가 검찰을 이용하는 방식이 편파적이고 노골적이다.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리란 점은 충분히 짐작한다. 결과적으로 정권이 원한 모습 그대로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완구 내년 총선출마로 명예회복

이날 기소된 이 전 총리는“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며“검찰이 성 전 회장에게 돈을 받은 시점도 명확히 적시하지 못하는 등 코미디 수사를 했다”고 반발했다. 이 전 총리는 내년 총선에 출마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편 홍 지사도“성완종 메모 중 홍준표에 대한 것만 사실이고 다른 분들은 모두 허위였다는 말인가”라며“참소(讒訴·헐뜯어죄를 꾸밈)를 밝히지 못하고 정치적 결정을 한 검찰 수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전 총리와 홍 지사의 향후 정치행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기소된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 대해 당헌에 따라 당원권 정지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결과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무권유죄, 유권무죄’라며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권력 실세에 대해선 깃털조차 뽑지 못한 초유의 수사”라며“검찰이 권력을 위해 존재한다고 자백하며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13인의 검사가 권력 앞에 무너지면서 성완종 리스트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특검 도입 등으로 지루한 정치공방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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