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답십리 영화전시관…고응호 감독의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인터뷰] 답십리 영화전시관…고응호 감독의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 박기영 기자
  • 승인 2015.0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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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거장 고응호 감독 인터뷰

고응호 감독
동대문문화회관 1층에 위치한 답십리 영화촬영소 전시관. 이곳은 55년 전 있었던 답십리 촬영소를 그리며 만든 곳이다. 현재는 지명 밖에 남지 않은 한국영화의‘메카’를 기리고 방문객들을‘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인도한다.

매주 금, 토요일 마다 상영하는 명작 영화도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시관만의 강점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해당 전시관의모든 전시물이 고응호 감독(한국영화감독협회이사) '개인'소장품이라는 것이다.

고응호 감독은 <팔불출>(1980),  <불새의 늪>(1983), <화랭이>(1985), <못먹어도 고>(1989) 등 수십편에 달하는 영화를 촬영한 한국영화계의 거장이다.  

다음은 고응호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 전시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뭔가?

▲80년대에 인도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다. 알다시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1년에 200~300편을 만들 시절에 이미 1500편을 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영화 필름부터 여러 가지 소품까지 영화와 관련된 것들을 따로 보관하더라.

그런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후학들을 위해서 영화계의 역사를 남기고 관객들을 위해 추억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렇게 보존·보관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가 수만 점에 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이 답십리 촬영소 거리를 지나다가 지금은 '지명만' 남은 답십리 촬영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침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보여주자, 당장 전시관을 만들자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아 시작하게 됐다.

▲ 동대문 문화회관 무료 영화 상영관에서 고응호 감독이 설명을 하고 있다.

-수만 점. 굉장한 양이다. 어떻게 모았나?

▲처음에는 내가 담당했던 작품이나 동료 감독들과 서로 주고 받은 시나리오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선배들과 동료들의 자잘한 개인 물품 등을 모았다. 또 감독들 중에는 작품이 생각처럼 안 풀렸을 때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내다버리는 경우도 있다.

보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 물건들을 일일이 다 모았다. 나중에는 이게 소문나서 직접 찾아와 여러 가지를 내줬다. 작고하신 선배들 자식들에게 찾아가서도 찾아가 설득했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 한국영화사에 보탬이 되자는 것이다. 돌려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돌려주겠다. 한국영화계 발전에 도움이 되어 달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모은 것이다.

지금은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특별전을 열어 전시물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런 속도로 공개한다면 단순계산으로 50년 정도 걸려야 전부 공개를 할 수 있다.

-50년은 과하다. 좀 더 넓은 곳에서 본격적으로 전시해볼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인이지 장사꾼이 아니다. 내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고증과 발전을 위해서 계획한 일이기 때문에 전시규모를 크게 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전 문제다. 이 전시관에 모든 물건이 내 개인 소장품이지만 나는 일절의 대여료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 사비를 들여 영화 포스터 액자 등을 구입하고 있다. 그 비용만 전시물 교체 한번에 100~200만원은 들어가는 것 같다. 현재 전시관은 구청에서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확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최근 다른 쪽에서 좀 더 큰 장소에서 제대로 전시를 해보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아직 논의 중이다. 만약 논의가 잘되면 좀 더 큰 곳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

후학들과 대중에 한국영화사를 좀 더 널리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료로 진행하고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유지비 때문에 입장료 정도는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열정이 대단하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그렇지만 영화감독들은 지갑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금전적인 부분이나 작품 외적 부분에 둔감하다.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 지인 중에서는 대여료도 받지 않는다는 말에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차라리 경매로 돈이나 벌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80 평생을 영화에 바친 내게 그런 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겠나? 게다가 젊은 시절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전시관에 영화계 후학들이나 일반인들이 많이 온다. 후학들은 영화사의 여러 전환점과 역사를 알고 자부심을 느끼고 간다면 일반인들은 향수 느낀다.

대부분의 일반인 방문객들이 ‘그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학생 때, 젊을 때 한국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었던 사람들 말이다. 함께 향수에 잠기고 당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한 즐거움이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 나이를 일일이 기재해 놨다. 세월의 흐름을 한층 진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다.

-3개월마다‘명감독 특별전’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최인현 감독이다.

▲최인현 감독은 우리나라 사극의 거장이다. 사극 복식 고증을 확립한 감독이다. 제작의뢰서도 전시중이다. 최 감독이 처음 확립한 이 복식들이 현재 나오는 모든 사극 등에 기본이 된 것이다.

▲ 고응호 감독이 실제 사용했던 카메라

-전시물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나?

▲내가 쓰던 카메라다. 지금은 전부 디지털로 변해서 이런 필름 카메라는 안 쓴다. 하지만 애증이 담긴 물건이다. 볼 때마다 이 카메라를 쥐고 영화계를 누볐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한참 영화를 많이 찍을 때는 1년에 11편을 찍었다. 거의 달 마다 한편씩 찍은 것이다. 그 때는 촬영팀이 2 팀으로 나눠 밤낮으로 번갈아가면서 촬영했다.

당시 난 조감독으로 참여했었는데 정말 눈 코뜰새 없이 바빴다. 이후 입봉하고 나서도 여러 곳을 누볐다. 이 카메라를 보면 그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현재 영화계를 평한다면?

영화감독은‘팔자’란 말이 있다. 돈 안 되고 힘들다. 우리 때는 촬영에 쓰는 카메라도 마음껏 못썼다. 사전에 촬영을 몇 번 할지도 정해야 했다. 검열도 심했다. 하지만 그래도 할 사람은 다 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영화감독들은 많이 풍요로워졌다. 최소한 촬영 여건은 굉장히 좋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좋은 작품이 많다.

우리 때는 생각도 못했던 촬영기법을 쓰기도 하고 꼼꼼하게 신경쓴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가끔 그런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모든 영화에는 풍자와 해학이 있어야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코미디 영화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이 미비하다면 그것은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계 후학들에게 한 마디한다면?

영화계에 열정 없이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하는 말은‘성실하고 정직하라’는 것이다. 변명은 비겁한 진실보다 나쁘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 언젠가는 전성기가 온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온다. 그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화감독은 ‘팔자’다. 불가항력적이다. 영화감독들은 꿈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라 영화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참고 견디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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