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휴양지 저도에서 박대통령의 추억과 낭만
하계휴양지 저도에서 박대통령의 추억과 낭만
  • 김길홍(언론인ㆍ한국미디어서비스 회장)
  • 승인 2014.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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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의 추억과 비화 ③

▲ 진해 앞바다 저도휴양소에서 홀로 섬 주위를 산책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1976.7.28.)
박정희대통령은 매년 여름이면 경남 진해부근 해역에 자리 잡은 저도의 휴양지에 머물면서 일주일 내외의 휴가를 보냈다. 섬 크기는 작지만 바다 앞으로는 거제도 장목리가 멀리 보이고 진해에서는 뱃길로 약40분 정도 걸리는 아름다운 섬이다. 별장 건물 한 채와 부속 건물만 있을 뿐 대통령과 그 가족일행이 머문다해서 시설이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박근혜대통령도 금년 여름 짧은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면서 사진 한 커트를 SNS에 올리면서 함께 했던 저도의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버지 박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여사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대통령 하계휴양지 저도의 경호 이채로워

박정희 대통령은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영부인 육영수여사, 근혜·근영 두영애, 영식 지만군 등 온가족이 함께 한적한 이곳 저도에서 며칠동안 쉬었다.

경호관 등 수행원은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동행한 대통령 비서실장·경호실장·대변인·주치의 등과 출입기자단 등은 하루 일정이 끝나면 대부분 저도에서 진해 해군 공관이나 시내 여관으로 돌아와 취침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소형 경비정을 타고 섬으로 들어가 박대통령 일행과 기자단이 어울려 수영도 즐기고 모래사장에 둘러 앉아 자연스럽게 담소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다.

72년 여름 처음 대통령휴가를 수행한 갓 서른 살의 필자는 처음 보는 장면에 새삼 놀랐다.

우선 저도 앞 먼 바다에 해군 구축함이 한 두척 정박하면서 외곽 경호를 하고 있었다. 저도 해변 모래사장의 좌우양쪽 바다를 향해 축조한 2개의 방파제 바다쪽 끝부근에 경비·경계를 하는 잠수복 차림의 UDT 5~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이들은 일제히 방파제 양쪽 끝에서 거의 동시에 바다로 뛰어 들면서 잠수했다.

시간이지나 물밖으로 대통령이 나오면 또 다시 방파제 위로 올라와 경호하는 좀 낯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대통령의 근접경호도 삼엄하지만 외곽경호도 군 작전처럼 치밀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제히 바닷물에 첨벙

항상 대통령의 경호는 삼엄했지만 휴가지는 주위가 바다와 섬이어서 비교적 한적한 까닭에 수행원들의 행동은 불편하지 않았으며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경호관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조용하면서도 늘 바쁘게 움직였다.

저도로의 첫 나들이에서 겪은 코믹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른살의 젊은 기자가 낯설게 목격한 장면이 40년 세월이 지났지만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밀짚모자를 쓴 수영복 차림의 박대통령이 몸을 반쯤 바닷물에 담근 채 서 있고,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비서실장·경호실장·수행한 대변인과 수석비서관·수행기자단 여러명이 물속에 둘러서서 한참 얘기를 나눈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던 대통령이 햇볕이 뜨겁자 이제 얘기 그만하고 수영이나 합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끝나자 마자 7~8명의 몸집 큰 측근 참모들이 모두 일제히 바닷물 속에 첨벙소리를 내면서 엎어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경쓰지 않는 농담 같은 지시에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한결같이 상명하복하는 참모들의 몸짓이 나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필자가 대통령비서관으로 6년을 재임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한 경험을 되살려보면 역시 대통령은 비서관에게는 무서운 상관이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잠시도 소홀하지 않고, 충성스럽고 바르게 모셔야 하는 존엄의 위치에 계신 아주 높은 분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됐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역시 대통령과 최고권력은 보통사람이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지엄한 위치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짐작만 했다.

사법파동에 격노하여 참모 모두 안절 부절

반공법위반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로 촉발된 법원의 사법파동은 71년부터 72년에 걸쳐 민감한 정치현안이었다. 여름 휴가차 저도에 내려온 박대통령이 예정시간이 지나도 대통령참모들과 출입기자단이 대기하고 있던 바닷가 해수욕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모두 초조하게 박대통령을 기다렸다.

한낮이 될 무렵 해변 언덕위 별장에서 박대통령이 서울의 누군가와 전화를 통화하면서 대단히 화가 나서 10여분 가량 큰 소리로 야단치는 성난 목소리가 아래쪽 해변까지 들려왔다. 그 순간 김정렴 실장, 박종규 실장, 김성진 대변인 등은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면서 안절부절했다.

당시 출입기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해변에 있던 참모들은 판사들이 항명한 사법파동으로 인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날 대통령은 끝내 바닷가에 나오지 않고 별장에서만 하루종일 머물렀다. 대통령이 호출하지 않으면 긴급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이 휴식하는 시간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비서실의 관례였다. 수행참모들은 이날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따로 해변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고 출입기자들과 어울렸다.

나중에 기자들이 확인해서 알았지만 대통령이 사법파동의 수습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장관 등과 통화하면서 크게 호통을 쳤다는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청와대를 출입한지 1년도 안된 필자가 대통령의 호통에 쩔쩔매는 최고위급 측근참모들의 표정과 동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영향력과 권력의 위세가 이렇듯 무섭고 막강함을 실감하기는 바로 휴양지 저도에서 처음으로 체험했다.

물론 수시로 열리는 각종 공식회의 때나 지방시찰을 수행 취재하다 보면 간혹 박대통령이 위엄과 자세를 갖추어 단호한 어조로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스스로 구상한 시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모습은 일상으로 봐왔다. 박대통령은 언제나 침착하고 차분했으며 화난 모습은 그때 까지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의 일선과 건설현장에서 큰 틀의 정책을 비롯하여 잡다한 시책들을 점검하고 지휘하는 박대통령은 사전준비가 완벽한 교장선생님 같았다.

지시사항도 요점 위주로 간단명료한 것이 특색이다. 평소 과묵한 성품답게 일선 기관의 보고도 끝까지 부동의 자세로 경청하는 스타일이어서 브리핑하는 공무원들은 항상 긴장하게 마련이다.

박대통령의 하계휴가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편하게 쉬는 때도 있지만 가뭄이나 수해가 심하면 휴양지를 떠나 바로 피해현지를 방문하는 민정시찰도 가끔 다녀왔다.

박대통령이 휴가 기간중에 좋아하는 여가선용 프로그램은 다채롭다. 섬주변의 수영과 바다낚시, 6홀 규모의 간이 골프, 사진 찍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 저도휴양소에서 수영복차림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왼쪽 첫번째가 필자.(1972.7.30)

재혼 얘기에 자녀들 결혼시킨 후에나

해변 모래사장에서 수행기자들과 편을 갈라 배구경기도 했다. 휴가지 저도에서 일년중 유일하게 박대통령은 엄청난 격무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유와 낭만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

박대통령은 하계휴가가 끝날 즈음 출입기자단과 수행요원들을 위해 한번정도 캠프파이어 파티를 베풀어 준 기억이 난다.

시원한 여름밤 저도 해변에서 마련한 장작불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여럿이 모여 앉아 약간의 반주와 바비큐를 곁들인 여흥 프로그램에 박대통령은 반드시 참석했다. 물론 이 자리에는 근혜·근영·지만군도 함께 나왔다. 참석한 모두가 즐겁게 노래도 부르면서 파도소리 들리는 여름밤의 낭만과 풍류에 심취하는 박대통령이었다. 흥겨운 자리였지만 그의 술취한 혼자 모습은 기자의 눈에 간혹 쓸쓸함이 묻어나는 외로움도 엿볼 수 있었다.

79년 여름의 저도는 박대통령 생전의 마지막 휴가인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 좌중이 모두 술기운이 오르고 분위기가 좋아진 틈을 타 기자 한사람이각하, 영부인께서 돌아가신지도 벌써 5년이 됐습니다. 이제 재혼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라고 진반 농반의 질문을 불쑥 던졌다.

박대통령은 이 말을 되받아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두 영애(당시 대통령 딸을 높혀 부르는 호칭)를 가르키면서 쟤들을 결혼이나 시켜 놓은 다음 나중에 생각할 문제라고 대답을 계면쩍게 하면서 쑥스러운 듯 말 뒷끝을 얼버무렸다.

74815일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박대통령은 60초반의 79년 당시까지 청와대에서 두 따님과 아들 지만군과 함께 생활했지만 홀로 지내는 박대통령이 불경스러운 표현이지만 보기 안쓰러워서 기자들이 일부러 속을 떠본 짖궂은 질문이었다.

그로부터 35년의 세월이 흐른 필자가 70대 중반에 이른 지금에 와서 보면, 박대통령은 낮에는 보고와 회의와 시찰의 꽉 짜인 스케줄로 몹시 바빠 잘 모르겠지만 주말이나 저녁 한가한 시간에는 가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박대통령이 아닐지라도 인간적으로 고독을 느낄 그 나이에 누군가가 곁에서 말벗이 되어 주고 보살펴주는 다정한 친구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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