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우리가 몰랐던 어머니 '우리들의 두 여인'
[신간] 우리가 몰랐던 어머니 '우리들의 두 여인'
  • 백서원 기자
  • 승인 2014.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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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탐욕 속에서 모든 걸 감싸안은 여성들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제1권 『전쟁을 이긴 두 여인』에 이어 출간된  홍상화 작가의『우리들의 두 여인』은 「능바우 여인」과 「동백꽃 여인」이라는 두 편의 소설을 담고 있다.

「능바우 여인」은 정년퇴직한 남편과 그 곁에서 변함없이 ‘품위’를 지켜온 부인의 이야기이고, 「동백꽃 여인」은 뒤늦게 만난 한 노부부의 애틋하면서도 우아한 이별과, 이별 이후에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을 대비시킨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특히 여성의 현명함을 부각하고 있는데, 작가의 말처럼 전쟁과 같은 엄청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는 시대의 탐욕 앞에서도 꿋꿋하게 본래의 우아함과 단아함을 지키는 두 여인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성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능바우 여인」의 주인공 ‘성환 씨’는 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뒤 사업에 실패한 아들 부부를 불러들여 같이 사는 처지다. 성환 씨는 “성삼문과 같은 고매한 인격으로 역사에 기록된 선비를 선현으로 모시는” 능바우 출신으로, 출세에 목매어 아부를 떨거나 물욕에 눈멀어 비리를 저지르는 인간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이다. 아들이 제안한 ‘건물 야간 경비직’을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 중인 그에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바로 그의 부인 ‘심 여사’다. 심 여사는 남편 성환 씨의 시선을 통해 자존심이 매우 강한 인물로 표현되지만, 무엇보다 야간 경비직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남편의 심정을 더 걱정하는 여인이다.

작품 속에서 성환 씨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며느리를 돕기 위해 친구이자 전직 장관 출신인 도만석을 만나는데, 그는 성환 씨와는 전혀 다른, 뇌물수수 등 온갖 비리로 돈과 명예를 거머쥔 출세지향적 인물이다. 그러나 성환 씨가 오랜만에 만난 도만석은 뇌졸중의 여파로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 다 아무 쓸데없는 것들이야”라는 도만석의 말처럼, 작품은 돈과 명예를 좇는 탐욕의 허망한 끝을 보여주고 있다. 품위를 목숨처럼 여기던 심 여사 또한 오랜 고민을 끝내고 친구 딸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를 결정한다. 성환 씨가 야간 경비직을 받아들이고 심 여사가 가사도우미 일을 선택한 것은 결코 품위를 저버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 이제 시간 나면 영화도 보고 맥주집에도 가요”라는 심 여사의 말처럼, 그럴듯한 자리에 앉아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소박하고 평범한 삶이 더욱 진정성 있는 삶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척박한 삶을 풍요롭게 일구는 두 여인...희망을 읽다

「동백꽃 여인」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사랑과 신뢰, 종교와 신앙, 문학과 진실 등 가볍지 않은 화두를 던진다. 작품은 폭력 남편과 헤어지고 자기가 낳은 자식과 떨어져 사는 고통 속에 살다가 뒤늦게 재혼한 뒤 동반자의 사랑을 알게 된 ‘홍숙진’이라는 한 여인이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 속에서 교수 정년을 앞두고 열두 살 연하의 홍숙진 여사와 재혼한 ‘정문호 씨’는 폐암 진단을 받고 병원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의 간호에 헌신하는 부인 홍 여사는 정 교수와 재혼한 후 병석에 있는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히 모신 바 있어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두 사람은 뒤늦게 만난 사랑에 감사하며 자신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홍 여사에게 감동한 정 교수는 부인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조치한 유언을 남기고, 두 부부는 남은 시간 동안 사랑과 종교, 인생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조용한 이별을 맞는다.

그러나 정 교수의 품격 있는 최후와 달리, 홍 여사를 기다리는 것은 남편 자식들의 천박함이었다. 부친의 영정 앞에서 시신 기증을 비난하고 새어머니 홍 여사에게 양도한 아파트의 재산권 행사에 욕심을 부리는 등 물적 욕망의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 여사는 그 탐욕의 아수라장에 휘둘리지 않고 고고하게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한다.

「능바우 여인」에서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현실주의자 며느리를 심 여사의 대립항으로 설정하고 있다면, 이 작품 「동백꽃 여인」에서 홍 여사의 대립항에 놓여 있는 인물은 정 교수의 자식들이다. 이야기와 소재, 또는 상징으로써 윤리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소설의 한 역할이라면,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대립 구도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윤리의식이 좀 더 잘 드러나게 해주는 탁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윤리의식이란 다름 아닌, 탐욕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자부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우한용은 작품해설에서 “윤리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가닥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에서 출발한다. 삶이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깨달음 혹은 그러한 감각의 획득이 윤리의식의 바탕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윤리의식이 작품 속에서 우리 곁에 있는 두 여인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슬 머금은 꽃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푸른 산을 유유히 넘어가는 흰구름을 바라보며 이승에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를 경탄하는 것, 날개 부러진 새가 파닥이는 것을 보고 눈물짓는 그러한 감성이 윤리의식의 출발점이다. 폴 발레리의 말대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런 감각이 살아 있어야 삶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작품해설 「소설의 도덕적 상상력과 예술성」 중에서)

작가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희생을 통해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안고 용서하는” 것이 그 옛날 한국 여성이 선택한 삶의 방법이며, 그것이 바로 현대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자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능바우 여인」과 「동백꽃 여인」작품 속의 두 여인은 우리들의 척박한 삶의 영토를 풍요롭게 일구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들이다. 다층적으로 조합된 도덕적 상상력과 날렵한 문학적 장치가 조화롭게 잘 빚어진 『우리들의 두 여인』은 우리들을 삶의 진실 앞에 우뚝 서게 함으로써 진한 문학적 감동 속으로 이끌고 있다.

홍상화 지음/ 한국문학사 펴냄/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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