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家 유산 분쟁...허일섭 회장 경영권 강화
녹십자家 유산 분쟁...허일섭 회장 경영권 강화
  • 박태현 기자
  • 승인 2013.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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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허영섭 회장 유산 사회 환원과 부인, 자녀에 분산

제약재벌인 녹십자의 선대회장에 유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법정다툼이 3년 만에 마무리됐다.

6일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이 장남 허성수씨를 유산 상속자에서 제외하라는 고인의 유언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할 의사식별능력이 있으며 유언의 내용이나 유언 경위로 보아 유언 자체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유언의 요건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2008년 9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던 허 전 회장은 퇴원과 입원을 반복 하던 중 2009년 11월 공증담당변호사, 유언집행자, 증인들, 배우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언공증절차를 진행했다.

허 전 회장은 유언에서 자신의 녹십자홀딩스 주식, 녹십자 주식 및 기타 회사들에 대한 주식을 장남을 제외하고 배우자와 재단법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 목암과학장학재단, 2남과 3남 등에게 유증한다고 밝혔다.

이에 장남 허성수 씨는 "허 전 회장이 유언 당시 유언능력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유언이 민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물론 1·2심도 “허 전 회장이 생전에 아들들에게 가급적 재산을 적게 남겨주고 특히 장남에게는 재산을 주지 않겠다고 밝혀왔던 점 등을 종합해보면 유언이 허 전 회장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가족간의 분쟁, 장남 패배]

가족 간의 분쟁은 2009년 허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시작됐다.

장남인 성수 씨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과 복지재단에 재산을 나눠주도록 한 부친의 유언이 무효라며 어머니 등을 상대로 낸 유언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냈다.

허씨는 “유언장이 작성된 1년 전에는 아버지가 뇌종양 수술을 받아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유언장은 아버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다. 어머니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2심, 대법원까지 어머니 정 씨와 재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유언이 이뤄진 시간에는 허 전 회장의 인지능력이 개선되는 경향이 있었고, 유언 전후로 한 대외활동 등을 종합하면 의사식별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며 "공정증서유언 역시 허 전 회장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이목은 유산상속에서 패한 장남에 쏠리고 있다. 일반적인 장자상속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상속에서 배제된 이유가 뭔가에 있다.

장남인 허씨는 2005년 15년간 미국 유학생활을 마친 뒤 귀국해 녹십자에 입사한다. 부사장까지 승진했지만 2007년 경영일선에서 배제된다. 또 2008년 경영기획관리실장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오히려 퇴사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2남과 3남은 연구조직과 지주사 부사장을 각각 맡아 경영일선에 전진 배치된다.

이번 소송에서 가족사에 일부가 밝혀졌다. 2008년 허성수 씨의 결혼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원인이라는 이야기까지 불거졌다. 이 때문에 고 허 전 회장이 사전에 법률자문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유산상속에서 배제됐다는 이야기다.

[법원판결로 허 회장 경영권 탄탄]

대법원의 판결로 허일섭 회장의 경영권은 탄탄해졌다.

이번 판결에 따라 고 허영섭 회장이 보유했던 녹십자홀딩스 주식(619만6740주)은 허 전 회장의 부인 정인애 씨에게 55만주(1.11%)가 상속됐다. 또 차남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과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은 각각 55만주와 60만5000주를 상속받았다. 2남과 3남은 각각 117만1680주(지분 2.36%)와 120만7430주(지분 2.44%)를 보유하게 됐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110만주를 기증받아 총 보유 주식은 471만5710주(9.52%)이다. 나머지 339만1740주는 장학재단 등에 기부됐다. 상속에서 배제된 허 씨의 지분(0.82%)에 불과하다.

허 전 회장의 유언에 따라 지분이 분산되면서 허 회장이 지분(10.33%)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됐다.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됐다. 이젠 허영섭 회장가에서 허일섭 회장가로 완전히 넘어간 것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시각이다.

만약, 허 전 회장의 지분이 허성수 씨에게 상속됐으면, 허일섭 회장에 경영권이 위협받을 상황이었지만,지분이 분산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사라진 셈이다.

[숙질간의 경영분쟁 휴화산]

녹십자는 허성수 씨의 유산소송이 숙질간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 경계했다.

허영섭 전 회장의 사망 6개월 전에 허일섭 회장 일가가 녹십자 지분을 매입한 것이 원인이었다. 허 회장과 부인 최영아씨, 아들 진성, 진영, 진훈 3형제가 2009년 4월과 5월에 10억 가량을 투자해 녹십자홀딩스 주식 1만3,048주를 매입했다. 또한 허 전 회장의 부인인 정인애씨와 2남과 3남도 그해 연말까지 37억원을 들여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매입했다.

허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일각에선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됐다. 여기에 상속에서 배제된 허성수 씨가 어머니와 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모자간 재산싸움’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소문은 사라졌다.

유산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허 전 회장 타계 2주기인 2011년 11월 정인애씨가 보유지분을 매각했다. 올 2월까지 녹십자홀딩스 지분 1.69% 전량을 팔아치웠다.

이는 허 전 회장이 부인과 2남, 3남에게 남긴 녹십자홀딩스 주식 15만5,000주와 녹십자 주식 6만주를 상속받기 위한 세금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보인다. 상속세법에 따라 지분가치를 환산하면 약220억원이며, 상속세는 약 100억원이다. 물납을 하지 않고 지분매각을 통해 세금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했다. 

이런 이유에서 재계 일각에서는 숙질간의 분쟁에 불씨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허 전 회장의 2남과 3남이 녹십자에 재직하고 있어 숙부와의 후계 경쟁에선 아직 배제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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