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銀 사태 시나리오 담은 내부문건 ‘공개 파문’
신한銀 사태 시나리오 담은 내부문건 ‘공개 파문’
  • 심요섭 기자
  • 승인 2012.08.21
  • 호수 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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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이름으로 신상훈 개인비리로 축출시켜라”

USB비밀문건 ‘신한사태 예상부터 결말까지 예측’
이상득 전 의원에 전달한 3억원 실체도 의혹 투성

정권말기 신한은행이 심상치 않다.
 
2010년 신한은행 비자금 사건을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개인비리로 몰아 축출하려한 정황이 담긴 은행 내부 문건이 재판 과정에서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설범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 전 사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에 대한 공판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날 신 전 사장의 변호인은 이 전 행장의 당시 비서실장인 변씨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증인이 계속 말을 바꾸자, 2010년 신한은행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문건을 꺼내들었다.

문건에는 “조직을 위해 사건을 개인비리로 몰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이 문건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변 전 실장으로부터 압수한 대용량기억장치(USB)에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변 전 실장도 입을 열었다. “조직이 보호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는 조직을 위해 신 전 사장이 축출됐음을 밝힌 셈이다.

신 전 사장의 축출은 한 편의 시나리오였다.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기승전결이 잘 짜여 있었다.

2010년 9월 2일 신한은행 측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하기 하루 전인 9월 1일에 故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을 만나기로 한다. 일종의 재가를 받기 위한 형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은행 측은 조직과 명예회장의 보호를 위해 부득이 신 전 사장의 개인 비리로 사건을 몰고 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아 신 전 사장의 선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중에 (신 전 사장이) 무혐의가 되더라도 은행이 적극 방어해 줬기 때문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내용을 적고 있다.

함께 압수된 다른 문건에는 은행 내부 비리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이를 정치권에 알리려는 후속 계획까지 담겨 있었다.

또한 △친인척 명의로 거액을 부당대출 부실화 950억원 △후임 사장은 은행장이 겸임할 예정 등의 내용을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과 허태열·이사철·우제창 의원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2년 전 ‘신한사태’ 다시 주목

신한사태는 2010년 9월 초 이 은행장이 당시 신 전 사장을 배임과 횡렴 혐의로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동시에 신한지주 이사회를 열어 신 사장을 해임하겠다고 공식 발표해 신한금융 내분 사태가 터지게 됐다.

이후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 전 사장은 면담을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서로간의 극한대립 양상만 다시 확인했다. 신 전 사장측은 신한은행이 라 전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 증거를 폐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 명예회장 고문료의 일부를 라 전 회장과 이 전 은행장도 사용했다는 정황도 제기했다.

이후 11월 라 전 회장이 자진 사퇴했고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대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업무집행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를 받았다. 신 전 사장과 이 전 은행장도 사임하면서 신한그룹 경영진 3인방은 경영 일선에서 모두 물러났다.

같은 해 12월 검찰은 그동안 진행해온 신한지주 사태와 관련해 신 전 사장과 이 전 은행장 등에 대한 수사결과 불구속 기소 조치를 내렸다. 반면 라 전 회장은 무혐의 처리하면서 신한사태는 일단락됐다.

당시 신 전 사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투모로와 금강산랜드에 438억원을 부당 대출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와 이 명예회장에게 지급할 경영 자문료 1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이 전 은행장은 2008년께 이 명예회장의 자문료 3억원을 횡령한 의혹을 받고 기소됐다. 당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신한은행 관계자를 통해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이 전 행장이 만사형통으로 불리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 3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3억원의 행선지를 확인하지 못해 이 전 은행장에 대해 횡령혐의로만 기소했다.

반면 라 전 회장은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혐의와 이 명예회장의 자문료 일부를 사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3억원 횡령에 관여했다는 물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를 면했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의 개인비리로 몰아 축출시켰다는 문건이 법정에서 공개된 이상 신한사태로 불명예 퇴진한 경영진 3인방을 둘러싼 ‘진실게임’도 밝혀질 전망이다.

여기에 이 전 의원에게 건 낸 것으로 알려진 3억원에 불법자금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이쯤 되면 신한은행은 정권말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신한사태 이후 사령탑에 오른 한동우 회장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라 전 회장의 짙은 그림자를 지우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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