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 흐르는 강물처럼
"나의 연인 J에게" - 흐르는 강물처럼
  • 김충교
  • 승인 2012.02.27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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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참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듯한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꼬집어 말하기 여간 곤란한 게 아닙니다.

문화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일 겁니다.

국가나 집단마다 다르고 개인들의 인식도 각자 다릅니다.

그래도 문화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해서 어떻게 하면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막연하지만 문화란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볼 뿐입니다.

그러면서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떠올립니다.

크레이그 셰퍼와 브레드 피트가 형제로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영화입니다.

미국 몬테나의 아름다운 자연이 배경입니다.

기막힌 풍광도 그렇지만 이 영화의 압권은 플라이 낚시입니다.

인생을 낚시로 풀어가는 묘미가 느껴집니다.

공중을 가르는 낚시 줄의 곡선이 주는 감흥이 인상 깊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흐르는 강물처럼>을 두고 대부분 사람들은 플라이 낚시를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인생의 무게를 플라이 낚시에 싣고 견디는 사람들의 얘기이니까요.

그래도 플라이 낚시만이 이 영화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문화의 비밀 코드를 푸는 열쇠가 숨어있습니다.

선술집에서 두 형제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탄주를 마십니다.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말입니다.

폭탄주를 마시고 횡설수설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영화를 보았을 당시 폭탄주의 유래가 아주 오래됐구나 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10년대 미국이었으니까요.

하긴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 2세들이니 스코틀랜드가 기원인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당시 사회적으로 폭탄주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음주문화 운운하면서 폭탄주를 다룬 뉴스기사들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연말이면 여전히 등장하는 뉴스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폭탄주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들이 있습니다.

우선 오랜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단합을 과시하기 위해 정치군인들이 즐겼다는 겁니다.

쨍!! 하면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 것에서 유래됐다는 얘기입니다.

또 검찰 쪽에서 시작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단박에 음주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업무상 시간에 쫓기는 탓에 그런 음주문화가 생겼다는 해석입니다.

사실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부러 폭탄주의 역사를 알기 위해 공부를 한 적은 없으니까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마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럼에도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나온 폭탄주 음주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때부터 혹은 저때도 폭탄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겁니다.

이후 그 장면은 폭탄주를 마실 때면 으레 떠오르는 영상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해서 <흐르는 강물처럼>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플라이 낚시와 폭탄주를 연상합니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이런 조합이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하구요.

거창하지만 문화란 저런 것일 수 있겠다고 끄떡입니다.

사실 새삼 문화 운운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문화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통해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이 예술의 전당 이사장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흐르는 물을 가두고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는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의 강도 모자라 문화 예술의 영역까지 가두겠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유 전 장관은 재임 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비판과 질타에도 끄떡하지 않고 최장수 장관이라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문화 예술계의 MB 아바타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현대건설 신화와 MB를 다룬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로 인연을 맺었다더군요.

그 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인연을 고리로 한다는 MB 인사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래서 이번 인사는 혀를 내두르게 할 만합니다.

낙하산 인사나 회전문 인사를 넘어 막가파식 인사라는 말이 들릴 정도입니다.

장관 취임 초부터 문화 예술 영역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그입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좌우를 가르는 경계가 애매합니다.

좌다 우다 하고 딱 가를 수 있는 지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이익집단에 동의하면 아군 그렇지 않으면 적군으로 삼을 뿐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허상에 불과한 현실이 비일비재합니다.

원칙을 존중하는 보수는 진보를 자칭하는 세력보다 훨씬 개혁적입니다.

물론 무대포식의 꼴통 보수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 중에는 가부장적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꼴통 진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예술의 전당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문화 예술기관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의 장은 격이 있어야 합니다.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의 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유 전 장관의 격은 백번 양보해도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멀리에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2008년 국정감사장의 욕설사건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찍지마! 씨X 찍지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사진기자들에게 대거리한 대목입니다.

현장에 있던 영상사진기자들에게 이 모습은 그대로 포착됐습니다.

당연히 가감 없이 전파를 탔습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분야를 총괄하는 장관이 연출한 장면입니다.

<전원일기>의 김회장 둘째아들 용식이를 기억합니다.

용식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상이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맞기고 사는 농촌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연기였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고정된 이미지의 틀 속에 갇힌 것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용식이 이미지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변하는 게 세상이고 사람이라지만 가슴 한구석이 썰렁해졌습니다.

다시 돌아온 유 전 장관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습니다.

흐르는 문화 예술의 강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길 바랍니다.

또 행여 못마땅한 일이 생기더라도 ‘성질 뻗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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