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 J에게" -생각의 함정
"나의 연인 J에게" -생각의 함정
  • 김충교
  • 승인 2011.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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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교 일요신문기자→경향플러스 편집국장→일요서울 편집국장
7번 국도를 달렸습니다.

제가 사는 변방에서 영동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입니다.

해안을 끼고 있는 구간이 많아서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는 곳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달린다는 것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탁 트인 바다 저편의 수평선은 삶을 왜소하게 만들거든요.

지지고 볶고 사는 일상이 별 것 아니라는 여유를 줍니다.

7번 국도를 달려 본 사람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겁니다.

강원도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일(忌日)이었습니다.

제주(祭主)인 형님이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거든요.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부모님의 기일은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다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회한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슬픔이나 안타까움 또는 그리움 등이 섞여있는 감정이겠지요.

살아있는 자들의 감정놀음 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기대했습니다.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좀처럼 기대를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비가 왔습니다.

출발하면서부터 내리던 비는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운무에 가려 흐릿했습니다.

가는 내내 바다는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볼 일을 보거나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멈춰선 휴게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번국도 주변의 휴게소는 대부분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서 운전에 지친 이들에게 힘을 불어 넣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내리는 비의 각도를 사선으로 만드는 바람만 거셀 뿐입니다.

파도소리 또한 거칠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무료하고 건조한 기분으로 액셀만 밟게 합니다.

그래도 영동지역으로 뻗은 도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달리다 보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타납니다.

또 전구간이 개통되지는 않았지만 동해안 고속도로가 펼쳐집니다.

강원도로 들어서면 운행하는 차량도 적습니다.

아예 한산할 정도입니다.

과속을 단속하는 카메라만 없다면 아우토반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비가 내려 기분이 쳐지긴 했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풍광 즐기기를 포기한 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아스팔트에 헤딩을 하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 빗줄기만 보이더군요.

어느 순간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내리는 비처럼 맨땅에 헤딩을 하다 죽고 물에 빠져 죽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나름대로 기를 쓴다고 하지만 누구나 어차피 죽는 게 아닌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위해 달려가면서 못마땅한 게 왜 그렇게 많을까.

사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 못마땅합니다.

그들의 뇌구조를 살펴보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의 뇌구조를 분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테니까요.

말로는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인정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맞부딪치면 머리에 쥐가 납니다.

빗길에서는 수막(水膜)이 생겨 미끄러진다는 생각도 잊은 채 달렸습니다.

정말 잊은 겁니다.

뒷좌석에서는 아내와 아이가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진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2005년 미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 중에 나온 대목입니다.

그는 죽음은 인생최대의 발명품이라고 했습니다.

잡스는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 했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등은 아무 것도 아니란 겁니다.

생각의 함정은 죽음에 비하면 진정 아무 것도 아니지요.

잡스의 이런 관점을 불교에 심취했던 전력과 관계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삐딱하게 들으면 성공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요.

그래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잡스는 막 새 출발을 시작하려는 졸업생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라.

뒤돌아보면 잡스의 이 말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런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자신하기 힘들거든요.

커 가는 아이들도 모두 ‘엄친아’로 불리기를 기대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공부 잘해서 명문대학을 가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부모들이나 기성세대가 만들어 온 사회가 강요한 논리입니다.

잡스는 다른 사람의 견해는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얘기지요.

마음으로 와 닿고 전폭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남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돈이 되지 않으면 생활은 어떻게 하냐구요.

말은 좋은 데 어디 그게 가능할 것이냐는 거지요.

단지 잡스처럼 성공한 사람들의 말장난이 아니냐고 넘겨 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젊은이들에게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 먹어 뒷방신세가 된 이들에겐 웃기는 얘기다.

대부분 기성세대는 그렇게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딜레마가 괴롭습니다.

그래도 포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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