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계좌 1000개 “요람에서도 은행거래를 한다”
백골계좌 1000개 “요람에서도 은행거래를 한다”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1.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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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은행권 백골계좌 ‘파문’

사망자 계좌로 버젓이 금융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신한, 우리, 국민, 농협 등 국내 주요은행에서 개설된 ‘백골계좌’(사망자 계좌)수는 무려 1000여개인 것으로 밝혀졌다. 차명계좌로 악용되어 범죄에 이용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은행 관리 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났다. 이는 금융권이 ‘금융 실명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무분별한 ‘차명계좌‘ 개설…불법거래 도구로 ’악용’
정부-은행 공조미비 “사망 확인 의무화 필요”

 

죽은 사람의 명의로 개좌를 개설해 준 신한·우리·하나은행·농협중앙회 등 은행권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났다.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한기호(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 8곳이 2009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544명의 사망자 명의로 998개 계좌를 개설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금융기관은 신한, 우리, 하나은행, 농협중앙회, 단위농협, 수협, 산림조합, 신협 등이며 총 예금액은 234억8700만원이었다.

기관별로는 단위농협이 가장 많은 615개(128억7000만원)를 개설해 전체의 61%를 차지했고 수협 194개(46억1800만원)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이어 산림조합 73개(27억1200만원)ㆍ신용협동조합 62개(6억600만원)ㆍ우리은행 19개(12억2200만원)ㆍ하나은행 15개(4억9500만원)ㆍ농협중앙회 14개(6억7800만원)ㆍ신한은행 6개(2억3200만원) 순이었다.

이러한 결과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금융위로부터 694명의 직원이 징계를 받았고 총 7억2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다만 최근 3년이 아닌 해당 계좌가 실제 개설된 2004년부터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적발건수가 가장 많은 단위 농협의 경우 473명의 직원이 징계를 받고 4억26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으며 수협도 114명의 직원이 징계를 받고 1억3800만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우리은행은 직원 13명이 징계를 받고 2800만원의 과태료가 내려졌다. 하나은행역시 직원 13명 징계, 1700만원의 과태료를 물었으며 신한은행은 직원 5명 징계에 과태료 1000만원, 농협중앙회는 직원 17명이 징계 받았고 과태료 2000만원을 부담하게 됐다.

금융감독원은 해당 기관에 대한 종합ㆍ특별검사를 벌여 이를 적발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한 금융기관까지 감안하면 전체 사망자 명의 계좌는 발각된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사망자 명의의 계좌 개설이 가능했을까.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하며 제3자가 할 경우 본인의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 직계가족이 대신 개설하는 때에도 가족관계증명서와 본인의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망신고를 마쳤다면 당연히 사망자의 계좌는 만들 수가 없다. 사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증은 말소되고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사망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숨진 사람의 계좌가 만들어진 것은 의도적인 범행 시도가 있었거나 위임장이나 신분확인 등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는 은행의 업무관행이 빚은 결과로 보인다. 신분확인에 소홀하거나 묵인했을 경우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다.

이렇듯 허술하게 계좌개설이 가능한 데는 시스템 문제도 한몫했다. 행정안전부가 보유·관리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정보를 금융기관과 공유하게 돼있지 않아 은행이 명의자의 사망 여부를 쉽게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원할 경우 행안부의 ‘주민등록증 음성 확인서비스’를 통해 신청자의 사망 여부를 알 수 있지만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의무화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금융기관에서는 계좌개설 신청자가 사망자인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처럼 은행들이 쉽게 만들어주는 사망자 명의 계좌를 통해 음성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다분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촉구된다. 

이를 증명하듯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포착된 불법 자금 거래 의심 건수와 총 금액이 급증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사 등 전체 금융기관의 의심 거래 건수는 지난 2002년 한 해 275건에서 올해(8월말 현재) 22만7000건으로 825배나 늘었다. 의심되는 거래의 총액은 2001년 130억1000만원이었던 의심거래액수는 올해 8월까지 44조458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는 75조9234억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해 한 의원은 "예금주 사망으로 장기간 휴면계좌로 전락하면 금융회사 직원이 다른 고객에게 사용하도록 해주거나 아예 차명으로 계좌를 개설해준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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