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나쁜호텔’ 건립 반대” 비난 고조
“대한항공 ‘나쁜호텔’ 건립 반대” 비난 고조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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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아! 경복궁·학교 옆에 초호화 호텔 지어야겠니?”
지난 22일 서울 송현동 대한항공 호텔 건립 부지에서 1인 시위에 나선 황평우 소장(우)을 한진그룹 측 관계자가 만류하고 있다.

한진그룹(회장 조양호) 계열인 대한항공(사장 지창훈)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서울 송현동 7성급 호텔 건립 사업이 관할 관청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이미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사업에 대해 ‘불가’ 취지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이에 불복, 항소했다. 대한항공이 사업 의지를 꺾지 않고 있지만 호텔 건립을 둘러싼 비난 여론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22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문화연대 약탈 문화재 반환 특위 위원장)이 사업에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돌입하는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시민단체들은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가로막는데다 불과 50m도 채 안 되는 곳에 덕수여중·고, 풍문여고 등 학교가 밀집한 곳에 특급 호텔이 들어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사업 저지 운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 대한항공, 경복궁·풍문여고 바로 옆 ‘7성급 호텔’ 사업 강행

- 시민단체 “전통문화 짓밟고 학생 수업권까지 방해할 것”

- KAL, “학교 인근 유해시설 안 된다” 법원 판결에도 불복


지난 22일 서울에 첫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서울 송현동 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 앞에 눈에 띄는 현수막이 걸렸다. ‘한진아! 경복궁과 여학교 앞에 7성급 호텔을 지어야겠니!’. 한진그룹 계열의 대한항공이 이 땅에 특급호텔 건립을 강행하는 것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덕수궁 터’ 지킨 그, KAL과 정면승부

1인 시위자로 나선 황평우 소장은 “바로 건너편에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있고 인근에 광화문 국가상징 거리와 박물관 등 전통문화 현장이 밀집한 곳에 상업호텔을 짓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지역을 문화전통거리의 특색을 살려 ‘문화벨트’로 묶으면 관광 상품으로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 실정법까지 고쳐가며 대한항공에 힘을 실어준 것은 정부가 사실상 재벌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2007년 MBC 프로그램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에서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 캠페인을 전개해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는 2002년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 건립을 위한 양국 정부의 합의가 이뤄지자 여러 시민단체와 연계해 4년 6개월여 동안 맞선 끝에 덕수궁 터를 지켜냈다. 일국의 왕궁이 있던 곳에 외국 대사관이 들어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역사문화적 소신을 굽히지 않은 덕분이었다.

황 소장이 대한항공의 특급호텔 건립 사업을 저지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경복궁과 광화문 국가상징 거리가 인접한 곳,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인사동 전통문화 거리와 북촌 한옥마을 등 ‘전통문화 특구’나 진배없는 곳에 일반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걸어서 1분 거리에 여학교 있는데도···”

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호텔 건립 예정 부지에서 직선거리로 50m가 채 안 되는 곳에 덕수여중·고, 풍문여고 등 학교들이 밀집해 있는 것. 학교보건법상 호텔은 유해시설로 규정돼 있다. 황 소장이 시위를 벌인 부지 앞에서 불과 1분만 걸어가면 풍문여고 정문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이진만)는 대한항공이 서울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심의결과 취소 청구 소송에서 중부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사업부지가 덕성여중과는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과 4.5m의 거리를 둔 채 접해 있고 풍문여고와는 감고당길을 사이에 두고 불과 7m의 거리를 두고 있다. 호텔이 완공될 경우 객실이 각 학교 건물에서 내부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위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춘기에 접어드는 학생들의 건전한 정서함양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 피고(중부교육청)의 판단이 현저히 부당하다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건립될 호텔은 단순 숙박시설이 아니라 공연장, 전시장을 갖춘 복합문화시설로 운영될 것”이라며 “인근 학생들도 이로 인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호텔 역시 숙박업소인 이상 일반적인 숙박업소와 마찬가지로 불건전한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에 대한항공은 승복할 수 없다며 항소,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학생들의 교육권과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대의적 명분에도 대한항공이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KAL에 특혜 준 꼴”

1심 법원의 불가 판결이 내려졌지만 대한항공은 호텔 건립 사업에서 잇단 호재를 맞았다. 지난 5월 31일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정병국)가 제출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개정안은 유흥시설이나 사행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의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건축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한항공의 특급호텔은 물론 전국 모든 관광호텔이 학교 인근에 들어서는 것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의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국회가 호텔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관련 법률 제·개정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종로구의회 측은 “지난 5월 31일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출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의결돼 바로 건너편이 경복궁이고 덕성여중·고등학교와 인접한 옛 미 대사관 숙소 부지에 호텔이 들어설 우려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소장은 “실정법까지 고쳐가며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사실상 재벌에 대한 현 정부의 부적절한 특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재홍 종로구의원(민주당·운영위원장)도 “정부는 법 개정까지 불사하며 호텔 지을 길을 열어줄 게 아니라, 역사·문화특구인 종로에 미래지향적인 시설이 들어서도록 지원해야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정안 외에도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될 관광숙박시설 확충지원 등에 관한 특별 법안이 국회 발의돼 대한항공의 사업 의지는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삼성도 호텔지으려다 포기한 땅”

한편 해당 부지는 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 3만6000㎡(약 1089평)로 2002년 삼성생명이 국방부로부터 매입해 미술관과 신라호텔을 건립을 추진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역 내 반대 여론에 부딪혀 사업은 무산됐고 이 땅은 2009년 한진그룹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한진그룹 계열인 대한항공은 해당 부지에 연면적 13만7000㎡(약 4만1442평) 규모로 지상4층, 지하4층짜리 7성급 고급 한옥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역시 지역 내 반발 여론과 실정법상 규제에 막혀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한진그룹이 해당 부지를 사들일 당시 이 같은 문제를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안재홍 의원은 “해당 부지는 인근 상업시설 부지에 비해 건평과 용적률 면에서 불리해 지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더구나 학교 밀집 지역이라 상업시설, 특히 호텔 건립이 쉽지 않다는 것을 대한항공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도 판결문에서 이와 같은 견해를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부지를 매입해 사업을 추진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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