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123층 마천루에 ‘신격호式 상생’ 공염불됐다”
“롯데 123층 마천루에 ‘신격호式 상생’ 공염불됐다”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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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롯데 슈퍼타워(제2롯데월드) 건설 현장

장장 17년이 걸린 숙원사업이다. 123층 총 555m 높이에 달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 건설을 둘러싼 규제 공방은 2009년 사실상 끝났다. 전 정권과 군 당국이 반대한 대규모 건축 사업은 현 정부와 서울시가 탄탄대로를 닦아줬다. 이른바 ‘제2 롯데월드’, 롯데 슈퍼타워 이야기다.

롯데그룹(총괄회장 신격호)이 1994년 처음 신청한 ‘제2 롯데월드’(이하 슈퍼타워) 건설 사업이 이달 1일 공식적인 첫 삽을 떴다. 기초 콘크리트 공사를 시작으로 슈퍼타워는 올해 말 지하공사를 마치고 2015년 3분기에 준공될 예정이다.

제도적 논란이 수그러들면서 공사는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폭풍전야’를 방불케 한다. 특히 기존 롯데월드 쇼핑몰에서 영업 중이던 영세 상인들에 대해 롯데 측이 상가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다.

현 정부의 ‘대기업 상생무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횡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 17년 만에 본격 ‘삽질’ 롯데 슈퍼타워 현장 공개
- ‘대한민국 랜드마크’ 최고급 쇼핑몰 ‘세기의 도전’
- vs “20년 상권 지킨 서민 내쫓는 몰염치 프로젝트”



지난 16일 서울의 낮 기온이 섭씨 32도를 웃도는 가운데 서울 잠실역 인근 슈퍼타워 건설 현장을 찾았다. 약 열흘 전 인근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대대적인 공사 시작을 알렸던 현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간간히 공사 관계자들의 차량과 인부들이 오가는 모습만 보일 뿐 지상 현장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시공사인 롯데건설에 따르면 슈퍼타워의 기초공사는 최하부인 지하 6층부터 시작된다. 지하공사가 마무리되는 시기는 올해 말로 알려졌다.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게이트 외벽에는 슈퍼타워의 완성 조감도가 수놓아져 있었다.

123층 세계 최고층 빌딩에 어울리는 화려함과 웅장함. ‘글로벌 롯데’를 외치는 롯데그룹이 심혈을 기울이는 역점 사업답다. 롯데 측은 슈퍼타워의 아케이드와 지하광장을 통해 송파대로 맞은편에 위치한 기존 롯데월드와 연결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불 꺼진 영업장에 ‘쓸쓸’

불볕더위에 지쳐 맞은편에 위치한 기존 롯데월드 쇼핑몰로 걸음을 옮겼다. 잠실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롯데백화점과 호텔, 극장과 국내 최대 규모 실내 유원지인 롯데월드가 위치한 곳이다.

평일 오후, 점심시간을 지난 시간이었지만 일찍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연인,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2006년 관람객 사망 사건으로 한 때 잠정 휴업의 아픔을 겪었지만 잠실 롯데월드의 인기는 여전하다.

다만 지하상가 점포 중 집기가 빠진 채 폐업 상태인 곳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불이 꺼진 점포 벽면에는 ‘롯데월드 쇼핑몰’이라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목에 빈 점포가 수두룩한 이유는 뭘까.

슈퍼타워 건설 허가가 난 2009년 롯데월드는 지하 임대 매장을 직접 관리하겠다며 임대차 계약 연장을 거절했다. 매달 임대료를 받고 점포를 빌려주는 게 아니라 롯데가 입주 점포를 ‘직영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얘기다.

상인들은 롯데월드가 완공된 1989년 7월부터 10평 내외의 매장 터를 분양 받아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식으로 20년 넘게 생계를 꾸려왔다. 하지만 슈퍼타워 건설과 맞물려 삶의 터전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

대중식당가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 A씨는 “그 힘든 IMF 고비도 넘기고 롯데월드와 동고동락한 사람들인데 롯데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릴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또 “대통령이 나와서 상생이나 공정사회니 하는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냐”며 “롯데 같이 ‘있는’ 사람들은 돈 없는 서민이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며 푸념했다.

 

서민과 ‘전쟁’ 벌이는 롯데

롯데와 입주 상인들의 갈등은 2009년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가 2008년 호텔롯데로부터 롯데월드 1, 2층 상가 운영권을 넘겨받아 지난 4월 임대 상인들과 협상을 타결시켰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았다. 합의에만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고 보상 수준도 인근 상권 시세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탓이다.

당시 합의된 보상금 규모는 현재 보증금 (5000만~8000만 원)의 2배와 9개월 치 임대료에 해당하는 금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신천 인근 상권은 상가권리금만 2억 원에 달하고 새 점포 개장까지 드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후한 액수는 아니다.

그나마 지하상가 상인들에게는 상가 운영권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 같은 보상책에서 제외됐다. 상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또 있다. 불경기와 인명사고로 롯데월드가 위기를 맞았을 때는 “곧 매출이 오를 것”이라며 발목을 잡던 롯데가 슈퍼타워 건설 등 호재가 겹치자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 탓이다.

롯데가 매출 급감으로 위기에 몰리자 임대료를 꼬박꼬박 내는 서민 상인들을 ‘안정적 수익원’으로 대접하다 상황이 좋아지자 ‘퇴점’을 요구하며 내쳤다는 얘기다. 롯데월드 측은 최근 재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일부 점포에 대해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통 큰’ 신드롬, 서민 내쫓기에도?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롯데의 ‘통 큰’ 신드롬이 서민 내쫓기에까지 적용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적지 않다. ‘상생’을 저버린 롯데의 얌체 행각은 수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대학로에 기습적으로 입점한 SSM(기업형 슈퍼마켓) 롯데슈퍼 대학로점은 당초 ‘피자전문점 오픈 예정’이라는 현수막으로 교묘하게 위장돼있었다. 비슷한 시기 문을 연 서울 용산구의 롯데슈퍼 원효로점은 ‘스시뷔페 개점 예정’이라는 홍보문구로 지역 상인들의 뒤통수를 쳤다.

이 같은 작태에 상인들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서민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게 재벌그룹인 롯데의 특기냐”는 자조 섞인 비난을 쏟아냈다.

롯데월드 지하상가의 한 업주는 “슈퍼타워 건설을 위해 갖가지 법령까지 뜯어고쳐가며 실속을 챙긴 롯데가 20년 넘게 고생한 임대점주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법대로’와 ‘모르쇠’로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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