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사기도박’ 충격 실태
진화하는 ‘사기도박’ 충격 실태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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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는 팔방미인? 미인계+마약+최첨단 IT장비 ‘총출동’

스포츠에만 ‘각본 없는 드라마’가 있는 게 아니다. 1966년 개봉작 ‘신시내티의 도박사’에는 에이스 석장짜리 ‘풀하우스’를 쥔 주인공이 ‘스트레이트플러시’를 잡은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극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도박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스트레이트플러시가 나올 확률이 0.0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영화 속 기적’이다.

그러나 국내 사기도박판에서 이 정도의 반전은 그야말로 ‘깜도’ 안 된다.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판돈을 싹쓸이하기 위해 타짜들은 ‘팔방미인’으로 변신한다. 미인계와 마약, 최첨단 IT장비로 중무장한 사기도박단이 무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LED탁자·속옷 형 카메라 중무장 억대 판돈 싹쓸이
- 호텔 카지노서 ‘손재주’로 딜러까지 속여 90억 꿀꺽
- 주부도박단 ‘미인계’ 등장, ‘날씬이파’ 여인 정체는?

 

딜러까지 속아 넘어가
사기도박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형광물질을 입힌 ‘목카드’와 특수렌즈를 이용해 비교적 소규모로 활동하던 전문 도박꾼들이 최근엔 수천만 원대의 최첨단 장비와 마약까지 동원해 판돈을 노리고 있다.

최근 서울 시내 호텔 카지노를 돌며 사기도박으로 9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전문가’인 딜러까지 교묘히 속이며 판돈을 싹쓸이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사기도박을 벌인 혐의로 장모씨(53) 등 3명을 구속하고 또 다른 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로부터 거액을 받고 사기도박을 눈감아준 혐의로 카지노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외 영주권자인 장씨를 포함한 일당 8명은 서울시내 한 호텔 카지노에서 바카라 게임을 하면서 딜러의 주의를 끈 뒤 몰래 카드를 빼돌려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수법을 썼다.

이들은 미리 적은 돈을 걸고 게임을 하다 조작한 카드가 나오면 거액을 배팅하는 방법으로 지난 한 해 9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달아난 일당 4명을 추적하는 한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LED테이블로 5억 원 꿀꺽
발광다이오드(LED) 테이블과 속옷형 무전기, 몰래카메라 등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사기도박단도 최근 무더기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31일 신종 도박기기를 제조해 유통시키고 이를 설치해 사기도박장을 운영한 혐의(상습사기 등)로 도박기기 유통·임대업자 김모(31)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또 제조업자 홍모(46)씨 등 4명에 대해서도 같은 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기도박장 운영에 가담하거나 도박장에서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조직폭력배 이모(35)씨 등 23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제조업자 홍씨는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LED 사기도박 테이블’ ‘속옷형 무전기’ ‘특수몰래카메라’ ‘이어폰’ 등 신종 사기도박 기기를 제작해 한 대당 50만∼1000만원을 받고 전국 80여개 도박장에 유통시킨 혐의다.

유통업자인 김씨 등은 홍씨에게서 구입한 LED테이블 2대를 도박장에 설치해 사기도박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의 30%를 ‘수수료’로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홍씨에게서 LED테이블을 구입한 이들 중 가운데는 조직폭력배도 포함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폭력조직 ‘부평신촌파’ 조직원 이씨와 이씨의 추종자 14명 등은 인천 석남동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에 사기도박장을 차려 운영해왔다.

이들은 ‘멘트 기사’ ‘사기도박 선수’ ‘도박장 관리’ 등으로 각자 역할을 분담해 도박판을 벌였으며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15차례에 걸쳐 신모(56)씨 등 8명에게서 총 5억3000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LED 테이블은 ‘목카드’와 달리 조작되지 않은 일반카드를 엑스레이(X-ray)로 보는 것처럼 판독하는 신종 수법이다. 일당은 LED 1500여개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게 깔아놓은 테이블에 카드를 올려놓고 적외선을 카드에 투과시켜 이를 특수 제작한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도박장 외부에 있는 ‘모니터실’로 전송해 카드 문양을 판독했다.

외부에서 대기 중인 ‘멘트기사’들은 상대방의 패를 사기도박에 참가한 ‘선수’에게 실시간으로 무전을 통해 알려주고 배팅여부를 지시했다. 경찰은 LED 사기도박 테이블이 서울, 부산, 강원, 인천 등 전국의 도박장 80곳에 유통된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미인계로 남성 유혹
주부도박단 사이에서는 미인계까지 등장했다. 최근 남성들을 유혹해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뒤 사기도박으로 수억원을 편취한 주부 도박단이 검거돼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달 3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미인계로 피해자를 도박장으로 유인한 뒤 마약을 먹이고 도박판을 벌여 3억5000만원을 뜯어낸 주부 도박단 A(57·여)씨 등 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평소 단골이던 덤프트럭 운전사 B(63·남)를 도박판에 끌어들여 마약류의 약을 탄 술이나 커피를 마시게 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 후 패를 조작해 도박판을 벌였다.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B씨로부터 약 1억5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A씨 일당은 비슷한 수법으로 지난 2009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C(63·여)씨를 상대로 사기 도박을 해 약 2억 원을 뜯어낸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은 강남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기 도박단 ‘날씬이파’ 조직원으로 드러났다.

일당은 도박장을 관리하는 '하우스장'과 대상자를 물색·유인하는 ‘미인계’, 함께 도박을 하며 패를 조작하는 ‘기술자’ 등 역할을 분담해 행동했다. 피해자 B씨는 이들의 꼬임에 넘어가 생계수단인 덤프트럭을 처분하고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마련해 빚을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 사기도박카드 식별 앱 제공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가 지난달 사기도박 카드를 식별할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국과수는 지난달 24일 사기도박 카드 식별용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치트 파인더’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별할 수 있는 카드는 형광 물질 처리된 ‘목카드’ 뿐이라 사기도박단의 첨단 수법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과수 문서영상과 영상분석실 직원 5명이 4개월에 걸쳐 개발한 ‘치트 파인더’는 뒷면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으로 판별할 수 있는 특수 잉크를 바른 이른바 ‘목카드’를 식별할 수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카드를 촬영하면 ‘치트 파인더’가 사진 파일을 판독해 특수 잉크가 묻었는지 감별할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사기도박 사건은 1년에 100여건 가량 적발되며 대부분 목카드가 범행도구로 사용된다.

국과수 문서영상과 이중 박사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비가시광선 영역의 잉크를 검출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지금까지 개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1월 대한민국 명의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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