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통령 이건희 회장, '현재 권력' MB 심기 건드린 '내막'
재계 대통령 이건희 회장, '현재 권력' MB 심기 건드린 '내막'
  • 이수영 기자
  • 승인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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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 "낙제 아닌 것 같다"발언...청와대 ‘발끈’

‘재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입’이 여론은 물론 현재의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까지 건드린 모양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이하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의 초과이익분배제안을 놓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을 운운하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한 마디로 직격탄을 날렸다. 또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며 인색한 평을 내놨다.

이 회장은 “내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학교(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에서 경제학 공부를 계속했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해가 가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익공유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인지 여부를 다시 묻자 이 회장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부정적, 긍정적을 떠나 도대체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 못했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95년 ‘베이징 발언’ 이후 첫 메가톤급 비판
1995년 이른바 ‘베이징 발언’ 이후 정부 정책에 대한 언급은 극도로 자제해 왔던 이건희 회장이기에 이날 발언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회주의’를 운운했을 만큼 수위도 굉장히 높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당시 이 회장은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삼성은 정권의 견제를 받아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그런 이 회장이 11년 만에 그것도 전경련 공식 회의석상에서 최근까지 국무총리로 재직했던 정운찬 총리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이익공유제라는 개념 자체가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구상, 제안한 것이다. 물론 재계관계자들은 관련 제안이 이미 청와대와 정·재계 내에서도 회의적이기 때문에 이 회장이 대표로 재계의 입장을 전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청와대와 여당 등이 이익공유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먼저 밝힌 만큼 정부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앞서 “이익공유제는 급진좌파적 주장”이라고 비판했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이익공유제를 기업 간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의 발언에는 경영상 현실적인 문제도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만약 제도가 실시되면 삼성은 공유해야할 ‘이익’이 가장 큰 기업인 까닭이다. 다른 기업들 역시 이익공유제 도입에 대한 반대입장이 분명하다.

여기에 4년 만에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이 회장이 기업 대표로서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무게 있는’ 발언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경련은 이 회장의 선친인 故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단체다.

 ‘면죄부 구입’에 사회환원 ‘카드’ 긁었나
이 같은 측면에서 이건희 회장의 비판 발언은 상당한 공감을 얻을 만하다. 시장경제 내에서 기업가로서 할 말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거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거액의 사회환원을 약속, 이행한 것을 놓고 그 속내를 따져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삼성이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될 때마다 사회환원과 기부를 약속하는 식으로 ‘면죄부’를 산 셈이라는 것.

정당하게 번 이익을 하청업체들과 나누자는 제안에는 정색을 하며 비판을 쏟아낸 이건희 회장이 1조 원에 달하는 기부는 아깝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아예 합법적인 경영승계를 위해 기부재단을 이용하려는 속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 약속은 일부만 지켜졌을 뿐이다.

삼성은 그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사재출연’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1960년대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 삼성은 계열사인 한국비료를 사회에 환원했다. 삼성자동차 부실채권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이건희 회장이 사재출연 약속을 해 무마됐다.

특히 지난 200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의혹, 불법대선자금, ‘삼성 X파일’ 사건 등이 잇따르며 ‘반(反) 삼성 정서’가 확산되자 8000억 원에 달하는 사재출연을 공언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시 5개월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이 회장은 ‘대국민 사과’에 해당하는 ‘삼성 현안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8000억 원 상당의 사회기금 헌납과 사회복지 확대 및 자원보상센터 창단 등에 2000억 원을 지원하는 등의 사재출연 약속을 내걸었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 이 회장과 자녀들이 소유한 계열사 주식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회장은 세 자녀들이 소유한 계열사 주식에서 생긴 추정이익과 숨진 막내딸 윤형씨의 상속재산 등을 합친 3500억 원에 이 회장이 1300억 원,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1100억 원을 모았다.

여기에 삼성 계열사들이 2100억 원을 공동 출연하고 2002년 설립한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기금 4500억 원 등 총 8000억 원 상당의 기금을 조건없이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이 약속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탄생으로 지켜졌다. 현재 재단은 삼성그룹이 아닌 서울 중부교육청이 관리 및 운영을 맡고 있다.

이 같은 행태에 일각에서는 “삼성은 투명경영 등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면하고 위기모면식의 선심 기부로 생색을 내려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악명을 지어준 국민정서에 항복해 매번 수천억 원대의 기부 약속을 남발하는 삼성이 ‘이익분배는 반시장적’이라는 비난을 할 자격이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삼성, MB정권 미운털 박히나
청와대는 이건희 회장의 “(현 정부의 경제성적표가)낙제는 아닌 것 같다”는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참모들 사이에 이 회장 발언이 듣기 거북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며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발언이)‘섭섭하다’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약하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기업들을 위해 엄청난 애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벗어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이 회장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배신감까지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삼성그룹 내에선 이 회장의 발언 파문이 확산되는 것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베이징 발언’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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